나 부반장 됐다!
그때와 같이 지금도 용기를 내고 있을까?
눈을 떴다. 그날따라 천장만 한참을 바라본 것 같다. 욕심이 나는데 욕심을 내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됐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누군가를 대표해도 되는 걸까. 걱정이 앞섰다. 오늘은 반장 선거를 하는 날이다.
거울을 봤다. 어떻게 하면 친구들이 나를 좋아할까 생각했다.
'안경을 써서 똑똑한 척을 해볼까?'
'첫 멘트는 어떻게 하지?'
거울 속 내 모습을 이리저리 바꿔보았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항상 불편했고 친구들의 행위가 선을 넘을 때면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웃음이 많고 장난기 많은 친구들이 좋았지만 친구들의 행동은 싫었고 때로는 친구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학년이 바뀌어 반 배정을 새로 했다. 함께 지내던 친구들이 5명이었는데 단 1명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게 슬펐지만 한편으로 기뻤다.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좋은 일들이 시작될 것 같았다.
"인아, 밥 먹어라!"
매일 아침 들리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일어나 있었던 티를 내지 않고 눈을 비비면서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으면서 ‘오늘 반장 선거가 있다.’는 말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하지 않았다. 괜히 말을 했다가 떨어지면 쪽팔리는 일이기도 했고 예전부터 좋은 일이 있으면 말하지 않았다가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주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을 자랑스럽게 말했을 때 활짝 웃는 엄마를 보는 게 큰 행복 중 하나였다.
선거는 아침 조회시간에 시작되었다.
"반장선거 출마할 사람?"
선생님의 목소리에 나는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휙 돌리니 반에서 재밌기로 소문난 남자애도 손을 들고 있었다. 그 친구를 보니 나는 이미 당선에 실패했다는 생각을 했다. 반 친구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1년 내내 힘든 생활을 하게 될까 두려웠다.
남자애 먼저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앞으로 나갔다.
“저를 뽑아 주신다면 푸하하하하 열심히 하겠습니다.”
짧은 인사 한마디가 전부였지만 모든 친구들이 왁자지껄 웃고 있었다. 원래 재미난 친구로 유명했고 사교성도 좋아서 모르는 친구가 없었다. 그 친구의 한마디로 모든 친구들이 웃고 좋아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자, 이제 인희가 나와서 인사하자.”
“네.”
앞에서 발표한 친구와 비교하다 보니 한없이 작아졌다. ‘그냥 안한다고 할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껴 보았던 안경을 쓰고 쭈뼛쭈뼛 앞으로 나갔다. 너무 긴장한 탓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긴장이 되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지만 이내 침착하고 목소리 톤을 높혔다.
"안녕하세요. 반장선거에 출마한 최인희입니다.
저는 공부를 비롯하여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뽑아주신다면 반 친구들과 선생님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맡은 일은 확실히 끝내는 반장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외되는 친구들 없이 모두가 어울려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끝내니 박수소리가 났다.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고 민망한 마음에 황급히 자리로 달려와 앉았다. 입술을 깨물고 주변을 살폈다. 긴장한 내 모습과 다르게 친구들은 장난스런 얼굴로 투표를 하기 시작했다.
집계를 하는 순간이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칠판을 봤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처럼 함께 출마했던 친구보다 투표수가 적었다. 결과를 바라보면서 슬프기보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나를 뽑아주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5표 차이로 인희가 부반장이 됐네요.”
‘내가 부반장이 됐다고?’
나는 깜짝 놀라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반을 대표하는 사람이 반장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부반장으로써 친구들을 대표하고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자 행복했다. 용기를 내어 선거에 나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달려갔다. 반장선거에 떨어졌지만 부반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빨리 엄마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엄마, 나 부반장 됐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면서 나를 꽉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