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게 아빠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아빠를 알고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어린 나이였던 엄마는 덜컥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무서웠기에 서둘러 아빠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에게 벌컥 화를 내고 당장 아이를 지우라고 고함을 쳤다.
내 기억 속에 아빠는 항상 희생하고 노력하는 좋은 사람으로만 기억되어 엄마의 이야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엄마에게 무례하게 한 행동을 듣고 믿어지지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있었던 일이고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했다.
혼전임신으로 차마 표현하지 못할 두려움을 가질 때 주변에 그 누구도 '괜찮다'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어서 무척 외로웠다고 했다. 멋모르는 시골 아가씨는 남편이 될 사람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가족에게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아이를 품고서 불안에 떨었다. 그러는 동안 아빠는 임신한 엄마를 뒤로하고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일삼았다. 그런 장면들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엄마는 몸도 정신도 피폐해졌다고 했다.
아빠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한 엄마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들에게 다가가 고함을 쳤다고 한다. 그러는 바람에 현장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났고 아빠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며칠 뒤 엄마는 아빠로부터 언덕이 있는 공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는 엄마가 도착하자마자 엄마 어깨를 꽉 부여잡고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배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발로 찬 후에 엄마를 밀쳤다. 엄마는 크게 놀라며 높은 언덕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눈물을 쏟았다. 그 행위는 배에 있는 생명체를 없애기 위한 행동이었다.
엄마는 언덕을 구르는 순간에 필사적으로 배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오빠를 지켜냈고 둘은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가정을 이룬 이후로 아빠도 나름 노력을 했다고 한다. 착실하게 일하며 돈을 모았고 아이들을 위해서 주말에도 다양한 외부활동을 진행했다. 하지만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아빠는 집을 훌쩍 떠났다.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릴 적 유난히 많이 싸웠던 엄마와 아빠.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어 후련하면서도 씁쓸했다.
“그때부터 둘 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렇게 많이 아픈가 보다.”
난 그 이후로 스트레스가 병을 만든다는 말에 신뢰가 갔다.
항상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부끄럽게 여기고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빨리 이혼한 것이 둘에게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게 있어서 아빠는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
그게 사실이라면 아빠의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다. 아빠의 입장을 들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사람 누구에게나 좋고 나쁨의 기준이 다르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에 아빠는 따뜻한 모습이 더 강했던 사람이다.
엄마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엄마는 덕분에 오빠와 너를 얻을 수 있었잖니. 그것으로 충분해.”
나는 엄마를 꽉 안아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