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수학 선생님 옆자리에 앉아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마다 오라며 나를 불렀고, 나는 수학익힘책과 연필 한 자루를 들고서 매 쉬는 시간 교무실에서 수학 문제를 풀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지, 내가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유 따위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는 그렇게 이유도 모르고 쉬는 시간마다 수학 문제를 풀었다. 지금에서야 그게 바로 관심이고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학교 쉬는 시간은 10분. 그 시간들을 모두 합치면 1시간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반강제적으로 수학 공부를 매일 1시간씩은 했다. 하지만 집중을 못하고 선생님 손만 빤히 보았다. 선생님 손은 조금 통통했으며 네 번째 손가락에 두꺼운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선생님 손만 관찰했음에도 선생님은 전혀 게이치 않고 나를 가르쳤다.
지나가는 선생님들은 우리 모습을 보고 한 마디씩 뱉고 갔다.
"인희야, 수학 선생님도 쉬어야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그런 말들을 들으면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수학은 수업 때 성적에 따라 A, B, C반으로 구분되었는데 선생님 담당은 B반이었다. 이번 시험으로 C반만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말고사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C반을 배정받았다. 그렇게 선생님께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졌고, 수학 담임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쉬는 시간 공부는 없어졌다.
이후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임되었다. 특별한 인사도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1년 후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여 A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10점~20점대를 왔다 갔다 하던 성적도 90점대로 오른 것이다. 나는 그 성적표를 보면서 가장 먼저 작년 수학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때 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표를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으로 성적표를 바라보았다.
교무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던 선생님의 자리. 지금은 선생님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모습과 따듯한 마음은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 떠올려보면 내 주변에 좋은 어른이 참 많았다.
아직도 나는 무엇 때문에 선생님이 나에게 그렇게까지 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오늘날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하필이면 200명이 넘는 전교생 중에 나를 집어서 그렇게 했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도 꼭 전하고 싶다.
선생님을 닮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의 그런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