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을 쓰다.
'무지'와 '두려움'이 낳은 결과
내 인생에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써내고 싶은 몇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나의 이름을 쓰고 싶다.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악독한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나 외에 다른 사람을 탓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실제로 내게 여러 고통과 피해를 입혔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권력은 '힘'을 상징하는데, 물질적 힘보다는 심리적인 힘을 뜻한다. 동등해 보여도 동등하지 않았던 관계. 즉, 내가 완전히 '을'이 된 상태이다. 이런 관계는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등 여러 관계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20대 초중반에 사람들에게 잘 휘둘리는 타입이었고, 믿을만한 사람을 찾아 헤맸다. '믿음직스럽다'라고 여겨지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삶을 추종하고 존경하였다. 일종의 사이비 종교를 믿는 심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을 따랐던 것은 낮은 자존감이 원인이 된다.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나는 부족한 사람, 상대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면 그 사람을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다. 또한, 이러한 사람들과 긴밀하고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다니면 마치 내가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사람을 통해 자존감을 채우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권력관계 속에 있게 되면 노예의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주인과 노예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주인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다. 노예란,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즉,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을 노예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시 나는 철저하게 노예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삶은 잠깐 자존감이 채워질지 몰라도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 큰 공허함 낳는다. 다행히 그것을 인식한 후 권력관계를 만드는 사람들과 연을 끊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나에게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피해를 입힌 당사자를 원망했다.
'나를 이용한 사람', '자기 이익 밖에는 모르는 사람',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 등 온갖 수식어를 붙여 내가 피해자임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다 며칠 전 그들과 나를 완전히 용서하는 계기가 있었다. 어떤 사람과 나눈 '권력'과 관련된 이야기 덕분이었다. 그 사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어쩌면 그 권력을 만들도록 내가 행동했던 부분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 나도 그렇지. 사실 내가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동조했었지.'
인정받거나 사랑받기 위해서, 혹은 특별한 관계를 맺어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 상대가 권력을 만들도록 굽신거렸던 모습이 떠올랐다. '권력'이라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추종하거나 굴복해주지 않으면 생겨날 수가 없다.
'내가 악마를 만들었구나...'
권력 앞에 굴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과 '무지'가 큰 이유일 것이다.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탐색이 없을 때, 이 사회 속에서 나만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질 때 어쩔 수 없이 권력에 굴복해 동조하고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야를 통해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가장 큰 원인의 대상이 '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작년부터 공부하는 것을 즐긴다. 심리학, 종교학, 인문학, 철학, 과학 등의 학문은 나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궁극적으로 나의 주관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며, 앞으로는 조금 더 성숙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의 지평을 넓히게 한다.
이제부터라도 나와 타인을 블랙리스트에 넣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자기 주관을 가지고 세상을 마주하려 한다.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노예가 되는 삶을 자처하고 싶지 않다.
먼저,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 주는 것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