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역설 프레임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있다. 이 해안선을 1km짜리 자로 측정을 하면 시작부터 끝까지 1km로 측정이 되는데, 1m짜리 자로 측정하면 구불구불한 부분을 더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어 1km를 훌쩍 넘는 결과가 나온다. 만약 분자 단위의 구불구불함까지 모두 고려를 해서 측정을 한다면 해안선의 길이는 사실상 무한대로 길어진다. 이렇게 측정의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해안선의 길이는 더 길어지는 현상을 해안선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 해안설 역설 프레임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현상이 몇 가지 있다.
독서를 통해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unknown unknown)' 지식을 알게 되면 더 많은 독서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독서량을 늘리면 더 많은 무지가 발견되고, 읽어야겠다는 책이 끝도 없이 늘어난다. 한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굳이 독서를 하지 않아도 잘 살아지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더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이유다.
무엇이 되었든 미시적으로 파고들어야만 보이는 세부사항이 있기 마련이다. 고객이 보기에는 금방 끝날 것 같은 일도, 세부사항을 알고 있는 전문가는 기간을 더 길게 잡는다. 심지어 전문가 스스로도 낯선 일에 대해서는 소요 기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호프스태터의 법칙'이라는 이름까지 붙어있다.
클라이언트가 일정을 너무 후려친다고 구시렁대던 프로젝트 매니저는 아이러니하게도 내부 개발자가 추산한 개발 일정을 후려친다. 마치 이중인격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자연스럽다. 클라이언트보다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프로젝트 매니저보다는 개발자가 더 많은 세부사항을 신경 쓰기 때문이다.
해안선 길이를 분자단위의 정확도로 재겠다는 사람에게, 지구에 있는 모든 책을 읽겠다는 사람에게 '굳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목표든 그에 비례하는 합당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파고들면 세부사항이 끝도 없이 튀어나온다는 것을 인지하고, 적당한 지점에 선을 긋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반면 내가 모르는 세부사항에 대해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과도한 일정이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입을 삐쭉 내밀고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이냐며 투정할 일이 아니다. 당신의 요구사항이 명확하지 않아서 겁을 먹은 상대방이 과도한 세부사항을 가정했을지 모른다. 그런 세부사항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런 차이를 좁혀가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소통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