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약 자식에게 단 하나의 습관만 교육할 수 있다면 독서를, 단 한 권의 책만 권할 수 있다면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을 읽히고 싶다. 삶의 많은 문제와 통찰이 에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에고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의식이다. 에고는 배움의 적이고, '사과를 못 하는 병'의 원인균이며, 확증 편향과 합리화의 투사다. 적절히 제어되지 못하는 에고는 삶을 병들게 한다.
담배는 애초에 시작조차 않는 게 끊기보다 훨씬 쉽다. 에고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고를 지배한 에고를 다루는 것은 인지하기도, 억누르기도 쉽지 않다. 애초에 에고가 밟혀서 꿈틀대지 않도록 하는 게 상책이다.
가장 부주의한 태도는 냉소와 피해의식이다. 냉소는 과소평가를, 피해의식은 오해를 부른다. 그런 태도로 내린 판단은 언젠가 대부분 틀렸음이 증명된다. 본인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은 잠자는 에고의 코털을 뽑고, 에고는 투쟁을 시작한다. 피해의식에 잡아먹혀 회사와 싸우고는 조건이 더 나쁜 회사로 이직한 사람이나 잘 해주던 소속사와 다투다가 연예계에서 퇴출된 연예인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도 주의해야 한다. 세상을 복합적으로 보는 눈이 부족할수록 현상은 단순화하고 대상을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일반화된 주장은 맥락이 달라지는 순간 금세 반박된다. 어김없이 깨어난 에고는 온갖 인지적 편향을 일으켜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이 현상이 가장 심한 분야가 바로 정치다.
에고를 밟지 않기 위해 안 틀리는 것도 좋지만, 애초에 틀려도 괜찮은 상황을 만드는 게 훨씬 낫다. 그러기 위해 항상 지적 정직함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진실에 대한 호기심이 앞서는 태도에는 에고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나의 생각이 틀려도 에고는 반응하지 않는다. 오답을 지워나가며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은 내 자존심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조심해도 에고는 끊임없이 튀어나와 봉기를 일으킨다. 그때마다 메타인지를 통해 에고의 존재를 인식하고 배제하는 끝없는 수련이 필요하다. 폭주하는 에고의 등에 올라타 자기 발등 찍는 일을 줄이면 인생이 한 결 편해진다.
에고의 속성을 알면 인생살이의 큰 힌트가 된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구는 '이해받고 싶은 욕구'다. 누구든 본인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화와 설득은 우선 상대방의 에고를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의 의견을 펼치기 전에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만했고, 내 생각에도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고 우선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호의적 해석의 원칙(Principle of Charity)이라고 부른다.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하고 싶더라도 우선 경청하고 인정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봄눈처럼 녹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나의 주장도 훨씬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물론이다.
구성원들이 에고를 조심하고 잘 다룰수록 조직은 더 잘 굴러간다. 모두가 지적 정직함으로 무장하고 조직의 목표를 함께 추구하는 것에 집중하면, 심리적 안정감 속에서 불필요한 갈등 없이 집단 지성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사람을 뽑는 자리에 있다면 에고에 대한 메타인지를 중요하게 볼 것이다.
누군가는 한 순간의 과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은 평생의 시간을 합리화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에고는 그만큼 독소가 진하다. 할 수만 있다면 에고를 내다 팔아버리고,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면 전신 포박해서 창고에 잘 넣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