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의 작동 원리는 극도로 복잡하여 아직 과학이 정복하지 못한 난제다. 이렇게 복잡한 대상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패턴을 파악하는 것인데, 재미있게도 인간의 뇌 자체가 패턴을 인식하고 활용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나는 인문학을 '인간 두뇌가 스스로의 작동 패턴과 그 결과로 파생되는 현상들을 이해하려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파란 물건을 찾겠다고 의식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파란 물건들만 보인다. 의식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프레임)을 짜면, 무의식은 그에 맞춰 작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두뇌는 프레이밍을 통해 의식이 무의식을 조종하는 작동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런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식 및 문제 해결 패턴을 '멘탈 모델', '프레임', '사고방식' 등으로 부른다. 인류는 책이 귀하던 시절부터 속담, 우화, 사자성어 같은 형식을 빌려 이 패턴들을 전승해 왔다.
의식은 무의식이라는 짐승의 고삐를 쥔 기수다. 무의식을 잘 다루려면 다양한 멘탈 모델을 배워야 한다.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무서운 이유는 채찍질밖에 모르는 사람이 말을 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알고 있는 멘탈 모델의 다양성은 인문학적 소양의 큰 부분이다. 다양한 멘탈 모델을 상황에 따라 얼마나 적절하게 사용하느냐를 일컬어 '지혜'라 부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멘탈 모델을 적용하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수양'이라 부른다. 오랜 기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수양한 인품을 '연륜'이라 부른다.
살아가다 보면 지능과 지혜가 아주 다른 것임을 알게 된다. 지능이 높은 것은 무의식의 연산속도가 빠르다는 뜻이고, 지혜롭다는 것은 의식이 무의식을 다룰 줄 안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지혜가 부족해 천리마를 타고도 절벽으로 내달리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인문학은 당나귀에 올라탄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지혜를 선물한다.
오래된 일기를 펼쳐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 하며 놀랄 때가 있다. 과거 나에게 있던 사고 패턴이 시간이 지나 잊혔다는 사실이 환기되기 때문이다. 멘탈 모델도 암기와 훈련의 영역이다. 보통의 지식처럼 기록해 두고 꾸준히 복기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나는 언젠가 쓴 글들을 정리해 나만의 사고 모델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지구 위에 발 붙이고 살아간 나라는 한 인간을 가장 근접하게 표상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