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저울

영점론

by 최은규

철학, 그중에서 특히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은 본질적으로 기대치를 조절하는 연습이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그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내 앞에 다른 차가 끼어들었을 때, 누군가는 화를 내는 반면 누군가는 평온하다. 기대의 영점이 다른 것이다.


'내 출근길엔 평균 2.5대의 차가 끼어든다'라고 생각하면 영점이 새로 맞춰진다. 이제 차가 끼어드는 사건은 동녘의 일출처럼 당연한 일이 된다. 통계적으로 예측된 현상에 화를 낸다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럽나. 가치판단의 저울에 '저 xx'로 측정됐던 앞차는 이제 '내연기관 운송수단'이라는 중립적인 무게로 달아진다.


고대 철학과 불교부터 거북이의 '빙고'까지 현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결국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다. 마음을 다스리는 철학이란, 기대치를 조절하는 방법 즉 영점 조절을 위한 구체적인 멘탈 모델을 말한다. 내 생각에 유용한 몇 가지 모델을 소개해본다.



객관화하기

서문의 끼어들기 예시가 바로 객관화다. 어떤 현상을 통계적, 확률적으로 당연히 일어난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매주 로또 당첨자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믿을 수 없고 가슴에 천불이 난다면 직접 로또에 당첨될 확률을 계산한 후 판매량을 곱해보자.


몸에 아픈 구석이 있어 억울한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 몸은 펼쳤을 때 2m에 달하는 DNA가 각각 담긴 30조 개의 세포, 10만 km의 혈관, 860억 개의 뉴런과 수백 조 개의 시냅스가 정교하게 맞물려 있는 기계로, 심장은 평생 30억 번을 콩닥거리며 2억 리터의 피를 밀어내고, 폐는 하루 2만 번의 호흡을, 신장은 하루 200리터의 혈액을 거르며, 우리 신체는 하루 수십 kg의 ATP를 합성하고 소모한다. 이 경이로운 기계가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쉼 없이 맞물려 돌아가니, 어디 몇 군데쯤은 고장 날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한편 본인이 너무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해변의 조약돌이라 생각해 보자. 갈매기가 해변에서 똥을 쌀 경우, 수 억 개의 조약돌 중 하나는 반드시 그 똥을 맞게 돼있다. 하지만 똥을 맞은 조약돌은 이 많은 돌 중에 하필 자신이 똥을 맞은 것에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이 '반드시'와 '하필' 사이의 간극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나면 조금 더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



멀리서 보기

지식은 영점 조절의 좋은 재료다. 지식은 사건을 멀리서 보게 해 주고, 희극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좁은 식견에서 벗어나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야 한다.


예를 들어 암수가 나뉘는 유성생식이 진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일 뿐임을 이해한다면, 특정 성별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에 빠지지 않는다. 남자는 왜 저렇고 여자는 왜 저래? 저러니까 당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기를 아예 물리적으로 실현한 사람이 있다. 바로 칼 세이건이다. 칼 세이건은 우주로 나간 보이저호의 방향을 틀어 61억 km 밖에서 지구를 촬영하자고 설득해 아래와 같은 사진을 건졌다.

250px-PaleBlueDot.jpg 파란 원 안에 있는 점이 지구다.


그리고는 아래 글로 많은 이들의 영점을 아득한 우주로 보내버렸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 수렵채집인,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 성자나 죄인들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다.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중



고라니제이션(Goranization)

우리 외삼촌은 가장 쓸모없는 동물이 고라니와 멧돼지라고 하셨다. 최근에 엄마가 회사에서 큰 배신을 당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을 만큼 힘들어하셨는데, 외삼촌의 말을 떠올려 배신한 사람을 고라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괜찮아지셨다고 한다. 고라니에게는 그 무엇도 기대하거나 실망할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방법을 '고라니제이션'이라고 명명했다.


나는 "그 또한 인간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되뇐다. 그 누구의 어떤 행동이든,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끈질기게 진화한 존재로서의 당연한 면모라고 보는 것이다.




저울에 올리지 않기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모든 일은 가치중립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애초에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그저 일어나는 일'로 취급하는 것이다. 애초에 그 어떤 것도 가치판단의 저울에 올려놓지 않는 마음 수련의 마지막 단계인 셈이다. 이 경지에 다다르려면 상당한 수련이 필요하지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 단, 무의미로 인한 무기력증이 부작용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두더지 게임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맞춰놓은 영점이 늘 어긋난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마인드 컨트롤이 잘 안 될 때도 있다. 이때도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인간적인 한 면모로 받아들여야 한다. 영점은 끊임없이 조절하는 것이다. 나는 늘 내 마음과 두더지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마법의 주문을 외워보자. "어~ 그거 원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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