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잊고 살아가자

by 최은규

나는 긍정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삐딱하게 보는 건 솔직히 즐거운 일이다. 나에게 죄책감을 주입하던 명제들을 깨부수고 나면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어떤 존재들을 혼쭐 내주고자 한다. 바로 죽음에 관한 격언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고, 두 번째는 '임종 직전 후회할 일을 떠올려 보아라'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나는 이 그럴듯한 격언이 대체 삶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한 번도 이해해 본 적이 없다.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출근, 운동, 독서, 명상을 하겠는가? 감정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작별 인사를 하고, 유서를 쓰고, 짐을 정리하고, 키우던 강아지를 끌어안고 엉엉 울어야 맞다. 조금 특별한 사람들은 사과나무를 심는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면에 걸려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산다고 해도 끽해야 실업자, 잘 돼봐야 사과농장주가 될 것이다. 왜 성공한 사람들이 이렇게 실없는 조언을 할까? 나는 본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언을 빙자했다고 본다.


누군가는 이런 말에 감명해 열심히 살기도 하겠지만, 내가 이를 구태여 꽈배기처럼 꼬아 보는 이유는 이런 류의 조언이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죽음을 앞둔 사람만큼 치열하게 살지 못 함'을 자책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 후회할 일을 떠올려보아라?

이 역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조언이다. 우선 나는 임종 직전의 순간까지 과거에 매여있는 후회쟁이 노인보다는, 즐겁게 살다 간다며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초연한 어른이 되고 싶다.


'뭘 해도 후회했을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프로 후회꾼들은 우리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나중에 저 사람처럼 후회할까봐 우리가 이미 내린 결정을 자꾸 돌아보고 의욕을 잃게 만든다. 어떤 땅이든 발을 딛었으면 힘껏 박차고 나가야 길이 된다. 세상에 완벽한 목표와 완벽한 경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는 주어진 삶을 즐겁게 살 방도가 없다.


죽음과 후회에 관련한 책도 몇 권 있는데. 그 책에 나오는 유명한 후회들을 반박해 보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볼 걸

-> 취미로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볼 걸

->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게까지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기억에 남는 연애를 해볼 걸

-> '부자가 될 걸'이라는 후회랑 뭐가 다른가?


죽도록 일만 하지 말 걸

-> 열심히 일했으니 굶어 죽지 않고 임종을 맞이한 것이다.


결혼을 할 걸

-> 결혼을 해도 후회했을 것이다.


자식을 낳을 걸

-> 자식을 낳아도 후회했을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너무나 결과론적이고 자기 연민의 향이 짙은 것은 차치하고, 이미 우리가 젊었을 적에도 무수히 접하는 조언들과 다를 게 전혀 없다. 높은 확률로 저 사람들은 젊었을 적에 이미 비슷한 조언을 들었고, 인지 능력이 멀쩡한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 기억을 모두 망각한 상태에서 임종 직전의 극도로 저하된 인지 능력으로 하는 후회가 진정으로 우리 삶의 기준이 될 만한 것인지, 한 번쯤 정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죽음은 우리의 지침이 되지 못 한다. 삶은 살아가는 자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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