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사로서 최고의 낭만은 단연코 자연이 빚어주는 풍경이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물리법칙 속에서 어떤 의도도 없는 순수한 무작위가 매일 완벽히 새로운 그림을 찍어 전시해 놓는다. 이 풍경들은 서류뭉치를 뒤적이며 툴툴대던 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내가 지금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무슨 의미로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끄집어낸다.
공장의 먼지가 닿지 않는 대양은 청량하다.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육지를 일부 떼어내 바다를 동동 떠가며 구경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가장 새파랗고 순수하다.
배는 비행기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좌우로 뒤뚱거리며 묵묵히 바다를 나아간다. 선교 양 옆의 윙브리지는 수평선을 넘나들며 시계추처럼 끝없이 풍경을 끄덕이고, 저녁에 이르르면 노릇하게 익은 노을을 날개 위에 얹어놓고는 했다.
노을에도 장르가 있다. 이따금 검은 정장을 입은 구름 떼가 몰려와 느와르를 연기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슬쩍 주인공을 보여주는 클리셰로 막을 내린다.
거대한 수소별께서 장막에 숨어 무얼 하시는지 바쁘다. 나는 하늘이 그려내는 완벽한 그라데이션을 좋아한다.
운이 좋은 날에는 기술 좋은 조명감독도 만날 수 있다. 기타를 열심히 배워둘걸 하는 생각이 드는 저녁이었다.
동화 같은 풍경 속에 욕망을 가득 실은 섬이 흘러간다. 하늘은 네모난 컨테이너에 담기지 않고도 우리를 늘 기쁘게 한다.
평평한 지구의 끝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1마일만 더 갔다가는 선수가 낭떠러지로 푹 꺼지며 우주로 곤두박질 칠 것만 같았다.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이 흔들리며 선장님께 당장 풀 어스턴을 넣자 하고 싶었지만 미상환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파나마 운하에는 배를 올리고 내리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데, 사공이 얼마나 많은지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산 위에 있는 가툰 호수의 물로 배를 끌어올리는데, 배가 너무 많이 다니는 탓에 호수 물이 부족할 지경이라고 한다. 사진은 먼저 올라가는 우리 배를 뒤따라오는 다음 손님 배.
배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풍경은 단연코 은하수를 비롯한 천체다. 조상들이 매일 밤 올려다보았을 우주의 적나라한 민낯은 이제 문명과 멀찍이 떨어져야만 볼 수 있는 귀한 풍경이 되었다. 티끌만큼의 먼지도 달빛도 구름도 없는 청명한 밤에 윙브리지에서 올려다보이는 우주는 헤아릴 수 없는 별로 점철되어 나의 넋을 잃게 하곤 했다. 또한 수 억 광년을 달려와 수시로 지구에 부딪혀 오는 별똥별들은, 우리 모두가 지구라는 한 배를 얻어 타고 우주를 유영하는 히치하이커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