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을유문화사, 2024, 교양 과학
� 책 소개 & 감상평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 이 책을 읽는데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마저도 완독이라고 보기 어렵다. 옮긴이의 말부터 서문과 권두사 부분만 무려 40여 쪽에 달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워 건너뛰었다. 보주(주석의 부족한 점을 보충한 주해) 부분 역시 읽기를 포기한 채 책을 덮었다. 본문은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숙제하듯 매달렸지만, 마치 난독증 환자나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처럼 글자 하나하나를 따라 읽을 뿐 머리로 이해하며 읽지 못했다. 그처럼 나에게 <이기적 유전자>는 어렵고 힘들었던 책이다.
물론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없진 않다. 중간중간 유전자를 설명하기 위해 사례로 든 몇몇 이론과 예시들은 기억에 남는다. 예컨대, 이기적인 행동의 예로 든 검은머리갈매기와 암사마귀, 그리고 남극의 황제펭귄, 이타적인 행동의 예로 든 가미가제 특공대인 일벌, 새끼에 대한 어미 새의 행동, 죄수의 딜레마 이론, 세대를 이어 전해져 오는 문화 구성 요소인 밈(Meme) 개념 등이다.
과학을 넘어선 고전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처음 세상에 나온 건 1975년이다. 내가 읽은 책은 40주년 기념판.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방대한 현대 연구 이론과 실험을 보여 준다.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유전자를 의인화해 설명한다. 그런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진 건 어디까지나 내 지적 수준과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가 만들어 낸 생존 기계’라는 것이다. 자유의지로 결정했던 모든 일들이 유전자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라는 주장은 생경하지만 의미심장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고,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해 과학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알릴레오 북’s 49회-전중환 편’, ‘전중환 교수의 이기적 유전자 완전 정복’, ‘책 읽어드립니다-설민석 강독’, ‘최재천 교수의 이기적 유전자 편’까지.
그중 동물행동학자로 유명한 최재천 교수는 <이기적 유전자>를 오전에 읽기 시작해 다음 날 새벽까지 내처 읽었고, 그날 안개 낀 아침 창밖을 내다보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이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 세계관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았다고까지 말한다. 지식의 격차가 이렇게 클 줄이야!
비록 내 과학적 식견과 인문학적 소양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기는 했지만, 과학 유튜버들 덕분에 다시 한번 이 책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또한 좀 더 많은 과학 서적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의욕도 생겼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읽는 날엔 이 책이 내 인생관과 가치관,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지도 모르겠다.
✍ 마음에 새긴 문장
� 1장.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라는 것이다.” -p.47
“황제펭귄은 바다표범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물가에 서서 물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중 한 마리가 뛰어들면 나머지 펭귄은 바다표범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어느 펭귄도 자기가 희생물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황제펭귄들은 그저 누군가 뛰어들기만 기다린다. 무리 중의 하나를 떠밀어 버리려고까지 한다.” -p.52
“동물의 이타적 행동 중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뚜렷한 것이 새끼에 대한 어머의 행동이다. 어머는 둥지에서나 체내에서 알을 품고,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새끼에게 먹이를 주며, 목숨을 걸고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킨다. 일례로 지상에 둥지를 트는 새 대부분은 여우와 같은 포식자가 접근할 때 이른바 ‘주의 전환 과시 행동’을 한다. 어머새는 한쪽 날개가 꺾인 양 몸짓을 하며 여우를 둥지로부터 먼 곳으로 유인한다. 포식자는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먹이를 따라 새끼가 있는 둥지에서 멀어진다. 마침내 어머새는 이 몸짓을 멈추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여우의 습격을 피한다. 이 어미새는 자기 새끼의 생명은 구했으나 자기 자신을 위험한 상태에 노출시킨다.” p.53
� 2장. 자기 복제자
“태초에는 단순함만이 존재했다...어느 시점에 특히 주목할 만한 분자가 우연히 생겨났다. 이들을 자기복제자라고 부르기로 하자. 자기 복제자는 가장 크지도, 가장 복잡하지도 않았을 수 있으나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든다는 놀라운 특성을 지녔다.” p.63~67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한 것이다.” -p.74
� 3장. 불멸의 코일
“치사 유전자란 자신을 지니고 있는 개체를 죽이는 유전자다. 반치사 유전자는 개체가 쇠약해지도록 하여 다른 원인에 의해서 죽을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한다. 모든 유전자는 생애 중 특정 단계에서만 몸에 최대 영향을 미치는데, 치사 유전자와 반치사 유전자도 예외는 아니다...노쇠 현상은 후기에 작용하는 치사 유전자와 반치사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 축적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산물일 뿐이다.” p.109
� 11장. 밈 - 새로운 복제자
“인간의 특이성은 대개 ‘문화’라고 하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 기본적으로는 유전적 전달이 더 보수적이지만 일종의 진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이다.” -p.359
“새로이 등장한 수프는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에게도 이름이 필요한데, 그 이름으로는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명사가 적당할 것이다. 이에 알맞은 그리스어 어근으로부터 ‘미멤mimeme’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진gene(유전자)’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다. 그러기 위해서 위의 단어를 밈meme으로 줄이고자 하는데, 이를 고전학자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중략)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p.364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p.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