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 보이지 않는 세상, 그러나 가장 깊은 시선으로 희망을 그리는 박환 화가를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한 점의 그림이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 지난해 가을,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우연히 마주한 박환(67세) 화가의 작품이 그랬다. 그의 그림은 일반적인 유화나 수채화와는 확연히 달랐다. 캔버스에는 청바지 조각이 덧붙여져 있었고, 흙과 나무껍질이 층층이 쌓여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냈다. 거친 표면 위를 유려한 색감이 감싸며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마치 자연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작품이 전맹 시각장애인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이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각으로 느끼고 표현해 온 시간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작품집을 구매해 사인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그림이 내 안에 남긴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몇 달 뒤, 나는 박환 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의 작품에는 어떤 철학과 감각이 담겨 있는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떻게 캔버스 위에 펼쳐내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다행히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고, 마침내 그의 작업실에서 마주 앉게 되었다.
이야기 하나 - 25년의 동양화, 그리고 서양화로의 전환
“그림을 전공한 것은 아닙니다. 군 복무 전에 이미 그림을 조금씩 그리긴 했어요. 전문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관심은 있었죠. 제대 후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하게 됐는데, 사실 처음부터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입대 전 알게 된 한 화가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제대 후에도 연락을 주셨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죠.”
그를 미술의 세계로 이끈 인물은 40여 명의 제자를 가르치며 작품을 판매하는 화가였다. 그는 박환 작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림을 계속할 것을 권유했다. 이 조언은 박환 작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동양화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25년 동안 이어졌고, 그는 여러 미술대전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동양화를 시작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했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작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죠. 하지만 주변에서 ‘도전해 보라’는 권유가 있었고, 그렇게 출품했는데 운 좋게도 최우수 입선하게 되었습니다. 뉴스에도 나오고, 저로서는 어안이 벙벙했죠.”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입선하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이후 25년 동안 꾸준히 동양화를 그리며 다양한 전시회를 열고, 여러 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해 수상하는 등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더 넓은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서양화 물감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직접 실험하며 새로운 화풍을 탐구했다. 서양화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1년 이상 독학하며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25년간 쌓아온 동양화의 기반을 뒤로하고 서양화로의 전환을 결심했다.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예술에 대한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7년간의 칩거 끝에 2012년, ‘빈자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주제로 첫 서양화 개인전을 열었다.
이야기 둘 - 삶을 뒤흔든 사고, 시력을 잃다
그는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꿈꿨다. 2013년 10월,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도 초청됐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그의 작품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3주 후, 그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과 맞닥뜨렸다.
한국국제아트페어를 마치고 서울에서 춘천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그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차는 내리막길을 달리던 중 앞서가던 트럭을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차량은 마치 성냥갑처럼 찌그러졌다. 구조대가 도착해 차량을 절단한 끝에야 그는 가까스로 구출될 수 있었다.
사고 직후 그는 의식을 잃었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후 두 달 동안 깊은 무의식 상태에 빠져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얼굴 뼈는 산산조각이 났고, 강한 충격으로 인해 뇌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담당 의사는 최악의 경우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렸다.
의료진은 그의 상태가 극히 위중하다고 판단했다. 좌측 뇌로 흐르는 혈관이 여러 곳에서 부풀어 올라와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터지기 직전이었다. 초기 검진에서 세 곳의 혈관 이상이 발견되었지만, 추가 검사 결과 무려 일곱 곳에서 문제가 확인되었다. 수술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으나, 가족들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의료진을 설득한 끝에 혈류를 차단하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살아남았다. 비록 좌측 뇌가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지만, 그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목숨은 건졌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비관적이었다. 좌측 뇌가 완전히 죽었고, 우측 뇌 또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해 결국 식물인간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예상을 뒤엎고, 그는 두 달 만에 기적처럼 눈을 떴다.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술 후 진행된 검진에서, 차단된 좌측 뇌혈관에도 혈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완전히 막힌 혈관을 따라 피가 흐른다는 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의사 생활을 하며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담당 의사는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들의 끊임없는 사랑과 간절한 기도, 최선을 다한 의료진의 치료,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환 작가의 강인한 생존 의지가 만들어 낸 기적의 순간이었다.
이야기 셋 - 다시 붓을 잡다
기적적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그는 시신경이 손상돼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1급 시각장애를 판정받았다. 화가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운명이었다. 현재 그는 실명 상태다. 바깥에서 태양이 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고, 빛의 유무도 감지할 수 없다. 오직 온도의 변화로만 햇살이 비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보일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현실을 깨닫게 되자 그때부터 절망의 연속이었죠.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이 저를 무너뜨렸어요.”
3개월의 병원 생활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박환 작가는 가족들의 권유에 따라 춘천의 한 맹학교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성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 과정이 기대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학생들이 일반적인 학습을 이어가는 것과 달리, 성인들에게는 침술이나 안마와 같은 기술 교육이 주를 이뤘다. 이러한 교육 과정이 본인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결국 몇 날 며칠을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교를 떠난 후 그는 일상의 어려움을 더욱 실감하게 됐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것이다.
“10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더디게 갔어요. 잠깐이라면 괜찮겠지만, 하루 종일 그렇게 지내야 한다는 건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 지루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는 단순히 앞을 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고, 의미 있는 활동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 큰 좌절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감옥에 갇힌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을 순식간에 낯설고 두렵게 만드는 일이었다. 익숙했던 공간은 마치 미로처럼 뒤엉켜 버렸고, 사소한 일상조차 커다란 장벽이 되어 눈앞에 가로놓였다. 그는 화장실을 가는 도중에도 벽에 부딪히는 일이 잦았으며, 특히 특정 지점에서 더욱 강한 충격을 받는다고 전했다.
“벽에 부딪혀도 꼭 같은 위치에 부딪혀서 극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어느 날은 너무 세게 부딪혀 눈썹 부위에 상처를 입어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에도 같은 부위가 다시 충격을 받아 결국 뼈가 부러져 추가적인 수술을 해야 했어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움직이는 것이 두려워졌고, 아예 몸을 가누는 것조차 망설이게 됐어요.”
그는 매일 소파에 웅크려 앉아 울기만 했다. 자신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때로는 절망에 사로잡혀 소리를 지르며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울부짖기도 했다. 그의 세상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고, 그 불안 속에서 그저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그림이 떠올랐다. 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그에게 가족들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한번 그림을 다시 그려보는 게 어때?” 처음에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가족들은 그가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길 바랐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가 오가자 결국 그는 동생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네가 한번 눈을 감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해봐! 안 될 게 뻔한데 왜 나한테 그걸 하라고 하는 거야?”
분노와 좌절이 뒤섞인 외침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혹시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케치북을 가져오라고 했어요. 하지만 연필로 선을 그어도 어디에 무엇을 그렸는지 전혀 알 수 없었죠. 그래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문득 뜨개질하시던 어머니가 떠올랐어요. 그 순간 실로 선을 대신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촉각 회화’였다. 점자처럼 볼록한 재질을 이용해 윤곽을 만들고, 손끝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방식. 그는 무명실을 사용해 캔버스에 스케치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 구슬핀을 꽂았고, 청바지를 붙이고, 흙과 나무껍질을 활용해 입체감을 더했다.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물감을 바르며 색을 조합했다. 그렇게 그는 손끝으로 캔버스를 느끼고, 기억 속의 색을 떠올리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점차 감각이 익숙해지며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해갔다.
“처음 그린 그림은 엉망이었어요. 나무와 집, 밭을 표현하려 했지만, 위치와 형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죠. 시력을 잃은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마치 쌀 없이 밥을 짓는 것과 같았죠. 캔버스에 색을 입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절망 속에서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습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동양화에서 서양화로 전환할 때 평범한 작품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선호했다고 회상했다. 서양화를 할 때도 일반적인 기법이 아닌 썩은 나무 합판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색을 활용한 작품을 제작했듯, 촉각 회화에서도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아 나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청바지를 붙이거나, 모래와 흙을 덧발라 작품에 입체적인 요소를 더하는 실험을 계속했다.
“청바지나 흙을 이용하면 캔버스의 표면이 더 두꺼워지고, 자연스럽게 입체감이 살아납니다. 사람들이 만져보면 더욱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죠.”
그는 나무껍질을 사용한 작품에도 깊은 애정을 보였다. 나무껍질을 캔버스에 붙이면 실제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릴 수 있어 더욱 현실적인 표현이 가능했다. 이를 위해 그는 가족들과 함께 산에 올라 적합한 나무껍질을 직접 구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촉각 회화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보지 않고 손끝의 감각만으로 위치와 형태를 기억해야 하며, 색깔과 크기, 각도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작은 핀을 활용했다.
“처음에는 일반 핀을 사용했는데 너무 둥글어서 불편했어요. 그래서 작은 핀을 사용하며 ‘이 부분은 두껍게, 저 부분은 얇게’ 등의 정보를 기억해 나갔습니다.” 핀을 이용해 세부적인 위치를 기억하고, 하나하나의 요소를 신중하게 배치하는 작업이 반복됐다. 그는 촉각 회화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 방식은 쉽지 않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과정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여전히 화가였고, 예술은 저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박환의 작품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는 오히려 더 깊은 감성과 울림을 담아냈다. 그리고 그 감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는 다시 전시회를 열었고,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야기 넷 - 희망을 전하다
2017년, 박환 작가는 전맹 시각장애인 화가로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회를 방문한 한 관람객이 다가와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세 번이나 사업에 실패했어요. 재산을 모두 날리고 절망에 빠져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던 중이었습니다. 모든 걸 끝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선생님의 전시회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그림을 그려 전시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믿을 수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가보기로 했죠. 그렇게 전시회장을 찾았고, 선생님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는 순간,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들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견뎌냈을까요? 그 과정을 떠올리니 제가 겪은 실패와 절망이 한없이 작아 보였어요. 선생님 덕분에 다시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그때 박환 작가는 깨달았다. 정작 자신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그를 보며 용기를 얻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그림이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박환 작가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나 의미가 깊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고 청했다. 그는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다고 말하면서도, 천 년을 산 은행나무를 소재로 그린 ‘경이로운 삶’을 대표작으로 꼽았다.
“어느 날, KBS 방송국에서 나를 찾아왔어요. 원주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혹시 알고 있느냐고 질문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본 적이 없었죠. 춘천이라면 모를까, 원주는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어요. 그러자 그들은 직접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렇게 따라간 곳에는 거대한 고목이 우뚝 서 있었다. 일반인들은 보호 차원에서 가까이 갈 수 없도록 차단해 놓았다고 했다. 하지만 박환 화가는 특별히 직접 이 나무를 만지고 경험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나무를 직접 만지고 바라보며, 그 안에서 삶의 철학과 교훈을 발견했다. 그가 처음 나무를 만졌을 때 하나의 거대한 줄기가 아닌 여러 개의 둥치가 있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나 곧 그것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단일한 생명체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모습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근본은 하나’라는 의미를 깨달았다고 전했다. 또한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는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그 후 자신의 잎을 모두 떨어뜨린다. 박환 작가는 이 모습에서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전성기에 높은 위치에 오르고, 부와 명예를 가지려 하지만, 진정한 존경은 겸손에서 비롯되죠.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다음 해를 준비하는 은행나무처럼 인간도 최고에 있을 때 겸손해지고 낮아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깨달음은 그의 예술 작품으로 이어졌다. 그는 은행나무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했으며, 특히 은행잎을 청바지 원단을 활용해 표현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은행잎을 단순한 종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삶에서 익숙한 소재인 청바지를 활용해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경이로운 삶’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으며, 관람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전시를 방문한 한 관람객은 “은행잎을 청바지로 표현한 것이 신선했다. 작품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삶의 철학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 예술가의 작품은 단순한 미술작품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교훈을 예술로 승화시킨 결과물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도 가장 찬란한 순간에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환 작가는 현재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나라에는 저처럼 전맹 시각장애인이 그림을 그리는 사례가 거의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도 전맹 시각장애인 화가는 11명뿐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11명 중 한 명이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 한국의 장애 예술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그는 또한 장애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이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는 말도 남겼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장애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이 많다고 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이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공간 지원이나 전시 기회 확대 같은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순간을 겪습니다. 저처럼 원치 않는 장애를 가지게 될 수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시 붓을 들었고,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시도하고 또 시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 앞에 서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나를 보고 다시 일어나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제 단순한 화가가 아닌, 희망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는 자신을 다독인다. 그리고 다시 붓을 든다. “포기하지 말고, 또 하고, 또 하라.” 그것이 바로 그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위해 그를 찾아간 곳은 춘천의 한 아파트였다. 내가 방문했을 때, 박환 화가는 거실 통창 앞에 이젤을 세우고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햇살이 은은하게 퍼지는 공간 속에서 그는 붓을 잠시 내려놓고, 따뜻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나를 반겨주던 또 한 사람. 박환 작가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박환 화가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늘 그의 눈이 되어주고 있었다. 여동생은 오빠를 찾아온 손님을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어주며, 편안한 인터뷰가 진행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화가의 공간을 둘러봤다. 그곳은 가정집이자 화실을 겸한 공간이었는데, 집안 어느 곳 하나 화가의 손길이 묻어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방안 곳곳에는 완성된 수많은 그림이 기대어 있었고, 이젤 옆 테이블 위에는 색이 덧칠된 팔레트와 붓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물감이 담긴 상자에 눈길이 갔다. 박환 작가의 말에 따르면, 물감마다 자기 자리가 있다고 했다. 세워진 각도가 조금만 삐뚤어져도 찾기 힘들어서 항상 물감은 칸막이가 설치된 상자 안 제자리에 놓고 쓴다고. 이곳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라, 화가가 세상을 그려내고 자신의 내면을 담아내는 아늑한 피난처 같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의 작품이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그가 바라본 세상의 감각과 기억을 담아낸 기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예술 작품이란, 단순히 아름답거나 완벽한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깊은 울림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어둠 속에서도 빛을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사람. 시각장애인 화가 박환의 그림은 그 자체로 삶과 용기의 증거였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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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환 화가 소개
- 수상 경력
한·중교류전(중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5회(1, 3, 11, 13, 14회/국립현대미술관)
제6회 후소회 공모전 동상(시립미술관)
제1회 풍경화 공모전 금상(한국관광공사)
- 연혁
1998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입선으로 등단
이후 다수의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과 수상을 하며 25년간 동양화 작가로 활동함.
2007년 동양화에서 서양화 작가로 전향
2012. 06 개인전 ‘빈자에게 바치는 헌사’(인사아트센터)
2013. 10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참가(코엑스)
2017. 01 개인전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박환 특별전’(갤러리 쿱)
2018. 02 단체전 한·미 국제현대미술교류전(조선일보미술관)
2019. 04 개인전 ‘불굴의 작가 박환’, 춘천KBS총국 초대전
2019. 05 개인전 ‘절망 속에서 찾은 한 줄기 빛’(춘천미술관)
2020. 01 초대전 개인전 박환: 끝나지 않은 여정(KT&G 상상마당 춘천미술관)
2020. 06 2020 강원현대미술전(국립춘천박물관)
2021. 06 초대전: 행복을 그리다 전(울산현대예술관 미술관)
2022. 04 제1회 에이블라인드 시각장애예술가전시회: ‘함께, 봄’(공간 와디즈 전시실)
2022. 10 장애인화가창작활동 ‘Painter's Dream’ 전시회(더샵갤러리)
2023. 02 제2회 에이블라인드 예술인 전시회 ‘검은색 사랑’(갤러리구루지)
2023. 11 제3회 에이블라인드 예술인 전시회 ‘물의 색’(구캔갤러리)
2023. 11 광주 에이블아트페어 초대 작가(김대중컨벤션센터)
2024. 09 제4회 에이블라인드 시각장애 예술가전시회 ‘나의 모든 순간’(노들갤러리)
2024. 10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4년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 개인전 ‘어둠의 시련을 손 끝의 희망으로’(갤러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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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5년 4월호(통권 제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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