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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욱 Jun 30. 2019

당신도 죽을 것이다.

죽음을 피하지 마라



1.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모두 미래의 시신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60p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는 좋은 죽음 그리고 마지막 몇 달, 마지막 며칠,마지막 순간, 시신 등으로 목차를 나열하고 있다. 죽어감과 죽음을 사실적으로 안내하고 서술한 책이다.  나는 '죽음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라' 그런 메시지를 기대하고 읽었지만 그보다는 매우 현실적으 죽음을 준비하게 하고 직시하게 한다.  책은 점차 죽음을 더 자세히 준비하게 하지만 나는 이 책 2장의 주제 저항에서 멈춰 서있음을 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마주하게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부담스러워지 책장을 넘기기 힘들기 까지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받아 들어야야 한다.  사랑하는 이들도 죽을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죽음은 필연이다. 이사실을 감내 하기란 매우 어렵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을 보아야 한다. 또는 내가 먼저 이 책의 내용대로 죽어 갈 것이고 죽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당신도 나처럼 죽음에 대해 저항하며 미뤄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행이도 책의 마지막에 다가가는 시신 편에서는 이런  나조차도 '내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까? 어떤 죽음을 맞을까?"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죽음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었다.


인생의 마자막 순간에서는 죽기 위해 어떤 병원을 가야 하고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시신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또는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어떻게 애통해야 하는지 죽음에 관한 가장 정교하고 상세한 내용을 담는다. 분명히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대비하며 분명히 다시 읽어 볼 것이다. 또는 내 죽음을 준비하고 이 책을 집어 들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읽었던 시간과 는 다르게 책을 읽으며 저항감과 슬픔에 방해받지 않고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상태로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2. 죽는 이에게 나를 강요하지 마라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도 그리 될 수 있다면


그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소로 그들을 끌고 가지 마라.
그들이 현재 있는 장소에서 만나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105p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주장과 내용을 강요하면 않된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 된다. 리포터가 돼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질문을 하면 않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계획을 도와주며 공감해주며 경청해줘야 한다.  만남이 있다면 언제 갈 수 있는지 알려주며 정기적으로 올 수 있다면 기한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면 좋다.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내용이 굳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만 적용되는 내용일 것인가?  죽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특히 마음과 육체의 상처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가진이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해주면 좋지 않알까? 책에서 강조하는 그 따뜻한 방문자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대해준다면 세상은 따뜻해지고 아름다워 질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시한부 인생의 방문자와 같이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3. 벼랑 끝에서도 딸기를 따먹다.




불교를 처음 실천할 때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호랑이를 피해 달아나다 벼랑 끝에 내몰린 방랑자의 이야기였다. 그는 나무뿌리를 붙잡고 벼랑에 매달린 채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숙이자 밑에도 호랑이가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근처 바위틈에서 자라난 야생 딸기가 방랑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걸 따먹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방랑자는 딸기를 맛있게 먹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296p


죽음이라는 호랑이를 피해 어떻게든 호랑이가 없는 곳을 피해 달아났던 게 우리 인생 아닐까? 죽음을 불안해하며 쫓기듯이 살 필요가 있을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만 굳이 딸기 맛을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광경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염소를 도축하는 것을 지켜봤다. 염소는 도축 바로 직전에도 풀을 뜯어먹었다. 나는 혀를 찼다. 죽기 직전까지도 자기 앞에 보이는 풀을 뜯어먹으려 하다니 정말 어리석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맥락적으로는 염소처럼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라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염소가 두려움에 떨며 고뇌에 찬 모습을 기대했던 것일까? 딸기든 풀이든 그것이 내 주변에 있는 행복이라면 그것 자체로도 족할 수 있다. 그곳에서 행복과 의미가 시작될 것이다.    


말썽꾸러기 어린애들이 시간이 흘러 모두 흰머리 노인으로 또는 병으로 힘들을 잃으며 죽어간다. 그건 나도 지금 이순간에도 태어나는 아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삶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일까? 어떠한 것들이 기억에 남았고 자신의 삶에 중요한 순간이며 가치였을까? 사소한 일들의 말다툼과 자존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소한 어린 소꿉친구들과의 축구경기와 놀이들은 그들을 미소 짓게 할지 모르겠다. 크기라는 규모가 의미를 만드는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더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찾아야한다. 옆에 있는 딸기를



4. 사후를 생각하다.


 8장 마지막 며칠에서는 죽음 직전에 감정적으로 격해진 사람들의 내용이 나오고'이들은 약품으로 그러한 거친 상태를 잠재워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 방식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과연 그게 올바른 죽음인가? 죽음을 뛰어넘으려면  사후의 신념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 죽음이후의 태도는 모두에게 다를 수 있기에 작가는 이를 강조해서 설명하지 않는 듯하다. 가끔 불교적인 사상을 넌지시 말하거나 죽음의 의미를 개인에게 마다 열어 놓는다.

 당신에게는 죽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죽음이란 자연의 순회인가? 아니면 천국과 지옥을 향한 통로인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 너머의 우리의 숙제인 것으로 나는 여겨진다.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각자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신앙적으로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음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더 준비된 신앙과 믿음을 새겨야 함을 자각하였다.


죽음과 삶은 이어져 있고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며 삶을 준비한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종착지점에 무언가 결과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이


죽음을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한다. 삶의 방향에 흔들림이 없도록

삶을 솔직하고 성실히 살아야 한다. 종착지점과 그 너머에 진정한 의미를 만들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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