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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욱 Mar 26. 2020

신념은 플라시보만의 문제가 절대 아니야!

신념은 당신의 삶의  영역을 넓혀줄 것이다.

무엇을 하던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또는 포토샵을 배우고 영어를 배우든 시간이 계속 지체되고 오래 걸리게 된다. 해야 될 것들이 많은데 이렇게 효율성이 떨어져서는 여러 가지로 지장이 많다. 결과에 초점이 맞춰지면 조급해지기만 하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노력해야 할 과정과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고 고쳐야 함을 깨닫고 고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목표와 비전을 설정했고 그 안에서 한정적 시간이란 것이 존재하기에 효율성이라는 것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나는 각자의 신념이 삶의 방향과 행동을 바꾼다고 믿는다. 단순히 플라시보 효과(믿음을 통한 기대효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몹시 매우 뒤쳐졌다. 단순히 머리가 안 좋기보다는 여러 잘못된 과정들이 존재했는데 특히 메타인지를 발휘해 최근 몇 년 사이에야 나를 보면서 깨달은 것들이 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추상화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나는 내가 가진 배움들이 항상 정해진 공식 또는 명료한 문장으로 정리되길 원했었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된다면 배우는 과정의 정확한 매뉴얼을 원하거나 혼자 정립해야 속이 풀렸다. 즉 정보는 글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새로 배우는 것이 내가 푸는 문제가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공식과 정의에 어긋난다면 정리와 요약집에 돌아가서 매우 초조해하고 왜 그런지 항상 생각하고 질문했다. 또한 완벽한 공식과 정의, 정리를 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즉 글을 완벽히 외우기에 집착했다. 정보가 맞든 틀리든 외운 정리된 문장의 단어를 다른 단어로 인출한다면 틀리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 학교교육이 이런 글을 완벽히 외우게 하는 측면도 있기도 한 것 같다.)

 그 당시에는  항상  질문하며 원인 등을 고민하는 버릇이 있어서 내 머리속은  혼란스러운 정리(글)들로 넘쳤고 더욱이 그러한 상태에서 모든 글들을 완벽히 외울 수 없었기에 나는 시험을 항상 망치게 되었다. (물론 다른 여러 나의 잘못된 과정들이 존재하고 그중 일부를 설명한다)


나는 지식이란 글이다.(정리된 공식과 정의와 같은 문장이다)라 믿고 있었다. 글을 정확히 소유한 사람이 지성인이라 생각했었다. 이게 나의 신념이었다. 그러했기에 모든 문장과 공식에 집착하고 그게 틀리면 전전 긍긍했고 고민했다.(약간 컴퓨터와 같은 기계의 모델에 착안해 이런 신념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다. 기계는 정확한 정의들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우와 하며 감탄해한다.) 



하지만 나의 그 신념은 틀렸다

공부를 할수록 지적인 사람들은 지식을 글로 담기보다 다양한 언어로 그 지식을 인출해낸다. 어떨 때는 영어로 그림으로도 때로는 자신의 행동으로 천재들은 감각으로 느끼고 생각한다라고도 말한다. 글은 정보의 풀어내는 인출의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보는 우리의 뇌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글은 인출로 드러난 것이다.글은 그런정보를 보여주는 한과정에 불과하다.

 그리고 극단적 예이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한문자로 정의할 수 있는가? 그 수많은 뉘앙스와 방식과 개인들의 정의는 너무도 다양하다.  글로서는 완벽한 정리를 할 수 없다. 글은 불완전한 인출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무지했었다. 글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 나조차도 몰랐었다. 

지금에서야 메타인지를 높여 깨닫게 되었다. 

글은 정보의 인출 밖에 되지 못한다. 

이러한 내 신념에 대한 강박관념이 바뀌면서 점차 공부가 자연스러워지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이 신념은 내게 아직도 좀씩 자리 잡아 있고 계속해서 새로운 신념으로 변환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나는 문장을 달달 외워서 읊어대는 사람을 지성인이라며 대단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재 나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런 결과들을 만드는 것일까?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 까지 일을 끝내지 못할까. 나는 완벽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즉 정확히 알아야 하고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신념은 위에서 언급한 나의 완벽한 글 집착의 신념을 파생했을 것이다.)


그렇게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초조하고 상당히 초조하다. 

내 완벽주의의 신념을 지탱하는 네 가지 신념을 소개하겠다. 


 1.  실패하는 것에 나는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라고 믿고 있으며 두려워하고 있다.(사실 실패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나다. 후회를 많이 한다)

 2. 뭔가 내가 행동해서 잘못된 결과를 만든다면 잘못된 내 행동으로 평생 동안 잘못된 결과를 유발할 것이다 라고 믿으며 두려워하고 있다. 

3.  완벽하게 한 번에 일을 끝내는 것이 결국에는 되풀이 하지 않기에 효율적이다라고 믿고 있다. 

4. 근본적인 신념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매우 욕심이 많아서 이기도 하다.


신념이라는 단어를 혼동할까 봐 정리하고 싶다.  신념이란 하나의 믿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확실한 느낌을 말하기도 한다. 정의하는 사람 나름이겠지만 나는 ~을 하고 싶다는 욕구의 범주도 신념의 범주안에 든다. 


거의 모든 신념은 어떠한 신념을 통해 파생된다. 위의 신념들은 나의 완벽한 정보에 대한 신념을 파생시키게 되었다. 내 완벽주의 신념을 무력화하려면 파생 신킨 위의 네 가지 신념들을 반박하며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 입증시켜야 한다. 참고로 수학 증명처럼 그저 논리로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렇게 몸에서 느끼게 돼야 입증은 가능해진다.


사람이 만든 결과는 무작정 자전거의 페달처럼 계속 밟는다고 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 고등학교 시절 내가 24시간 잠도 안 자고 쌍코피 터지면서(물론 몸을 무리하게 하는 이과 정도 잘못되었다) 공부했어도 나는 하위권을 맴돌았을 것이다.  자전거가 안 나간다면 자전거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봐야 한다. 그것의 핵심에는 인간의 신념이 있다. 나는 사람의 가능성을 믿는다. 하지만 그건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는 전제의 이야기이다. 



 항상 신념을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신념을 변환하고 나를 일으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 글을 다 읽었다면 신념이 플라세보라는 하나의 국한된 분야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삶의 더 나은 영역의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다른 사람들에게 수많은 충고와 조언을 들었지만 전혀 듣지 못했던 내가 공부하며 착안한 핵심적인 지혜이기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문제는 신념이다. 신념을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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