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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욱 Mar 28. 2020

두려웠지만 찬란했던 과거

나는 그 순간 가장 찬란한 존재였다.

7년전의 일이다.  군대에 가기 전 내가 하고 싶은 노래를 너무도 배우고 싶었지만 모아둔 돈으로는 학원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가 2달 학원비를 지원해줬지만 무슨 노래냐며 가정형편을 이야기하며 크게 반대하셨고 아르바이트도 안 해본 나로서는 직접 돈을 벌 방법밖에 없었다. 곧 2,3달 안에 군대를 가야 하니 알바는 할 수 없었고 학원비를 빨리 충당해야 하니 인력소에서 하루벌이밖에는 나에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최소 6시 전에는 인력소에 도착해야 하지만 새벽에는 버스가 없었다. 1시간이 되는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더욱이나 나는 기술이 없었기에 인력소에 가게 되면 일을 못 받을 수 있었고 어떤 일이 배정이 될지 매일 두렵기도 했다.


 처음 가서 한 일이 월풀 냉장고를 각 가정에 옮긴 일을 했었다. 가뜩이나 힘도 더 없던 시기에 그 무거운 냉장고를 흠집이 안 나게 옮겨야 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나선형 계단부터 시작해서 오르막 빌라 등 밤늦게 까지 지역을 누비며 작업을 했었다. 나중에 보니 아무것도 모른 내게 야간작업 수당도 안 주고 그 사장은 내빼기 까지 했다. 그날을 생각하면 기간은 단 하루이지만 내 인생에 한 달 이상으로 남는 기억이다. 

그 외에도 많은 일을 해봤다. 폐수처리장에 가서 작업도 해봤고 공사장서 삽질도 여러 번 했었다. 


인력소에 가기 전 교회 모임에서 엉엉 울었었다. 

나 너무 두렵다고 하기 싫다고 울음을 쏟아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해서 5시 전에 집에 출발해 1시간 동안 걸어서 인력소에 도착했다. 인력소에서 만난 모르는 중국인들과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타고 나는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난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그보다 더 큰  열망이 있었다.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감동을 주는 보컬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했기에  앞이 안 보이는 두려움에도 나는 앞을 향해 용기를 품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존재였다. 


지금 돌아보니 가장 찬란한 순간이 그 시기였다. 다른 어떤 성취보다 나의 그 다짐과 용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짧았지만 내 삶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삶을 채우기 위해서는 그러한 순간들을 쌓아나가고 싶다.


말도 안 되고 실패에 두렵고 힘에 겹더라도

 내 비전을 위해 나아가는 그 용기의 발걸음

그 걸음들로 내 삶을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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