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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욱 Apr 18. 2020

공부를 시험으로 담을 수 있을까?

글은 지식을 다담지 못한다.

고등학교 시험기간 나는 항상 학교 선생님이 나눠 주신 프린트의 글자를 달달 외우도록 노력했다. 눈을 감으면 프린트정리된 글들이 선하게 보이는 것을 원했었다. 그게 나에게는 공부와 지식의 전부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공부하고 느끼며 사색하는 부분이 있다.


 최고의 실력자라 할 수 있는 명문대 교수라는 사람들도 머리속에
 노트정리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혼돈을 싫어한다. 항상 정리된 것을 좋아하며 명료한 것들을 찾기를 원한다. 나도 그렇다. 항상 매뉴얼, 행동지침을 항상 찾고 그게 없다면 내 경험과 행동 안에서도 그러한 명료함을 항상 남겨놓으려는 강박이 있다. 이러한 이유는 자신감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형체가 없는 모호함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형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는 지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까지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은 그렇게 단순하게 글로서 정리되는 단순한 범위의 것이 아니다. 명료함에 담을 수 없는 암묵지(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들이 담겨 있기에 단순하게 글로서의 공부는 우리가 하는 공부 자체를 왜곡할 수 있다. (매우 아이러니하다. 틀리지 않기 위해 글을 달달 외웠지만 글만 외우면 현실에서는 항상 틀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육이 잘못돼있는 것일 수 있다. 공부란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암묵지를 통해 실제적으로 완전해지는데 우리는 단순히 밤새서 글만 달달 외우기 시합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잘하는 학생들에게 최고점을 준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매우 실력 있는 철학자에게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가정해보자. 철학자의 머릿속에 우리가 시험공부 했던 방식대로

1) 본질은 사물의 근본적인 특성이다.

2) 사물이나 형상 존재에 필요한 성질

3).....

4).......

이렇게 정보가 나열되어서 나타날까? 시험기간 공부 방식대로 노트 정리 처럼 지식이 떠오르며 질문자에게 어떤 지식이 학생에게 시험공부를 위해 좋은 정보일까 고민하며 선별해 정보를 알려줄 것이라 생각하는가?

 철학자는 질문을 들음과 동시에  책 몇 권 분량의 막대한 정보의 양을 바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그다음의 순서이다. 물론 언어도 중요하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사고를 만들기에 매우 유용한 도구이고 소통의 매우 필수적인 매개체이기도하다.

 하지만 정보를 가진다는 게 곧 정보는 아니다 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왜 그렇게 글에 집착했을까? 글이 아닌 지식의 전체를 받아들여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올바른 글들은 이야기한다. 읽는 이 글들로 지식을 가졌다 생각하지 말라고 직접 경험하며 행동해서 너의 지식을 더욱 완전하게 만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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