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상업 영화라기보다는 다양성 영화라고 해야 되나. 다양성 영화라는 말이 요즘 들어 새로 생긴 듯 하다. 그 전에는 그냥 독립 영화 정도였는데.
요즘은 예고편을 의식적으로 보지 않지만, 우연찮게 감독이 비포 선 라이즈 시리즈를 만든 바로 그 사람이란 걸 알아 버렸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믿고 봐도 된다는 소리다. 감독이 남자주인공은 물론이고 모든 배우들과 자그마치 12년 동안 같이 나이를 먹어가며 세월을 따라 찍은 영화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대단하고,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했는데, 거기다 감독까지 명불허전, 바로 그 감독이라니.
예고편을 본 후에 본편을 봤다면 감흥이 다소 떨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최고였다. 그럴듯한 사건, 사고도 없이 자그마치 두 시간 사십분을 지루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나 흥미롭게 끌고 간다는 사실도 그랬고, 점점 나이를 먹고 변화해가는 극중 등장인물의 모습 역시 단순히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
‘올해 최고 영화중 하나이지 않을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거머쥘 듯 하다.’
이미 한참을 지났지만 영화를 본 당시 느낌이었다.
내가 말한 시상식은 아카데미였지만 골든 글로브라도 가져갔으니 다행이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시상식의 성향 자체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냥 재미있는 영화가 아닌, 좋은 영화를 본 후에는 뭔가 기분이 상쾌하다고 해야 하나,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가슴속 울림이 일어난다. 이미 영화를 보는 중에도 그런 케미는 있었다.
요즘 조카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지금 시점으로 이제 만으로 일 년이 조금 지난 동생의 아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선물이다. 일주일에 한번을 보기도 했고, 한두 달에 한번을 보기도 하는 등 바쁘지 않고 틈만 나면 되도록 얼굴을 많이 보려고 애를 썼었다. 큰 아버지인 나도 이렇게 이뻐 죽겠는데 당사자인 부모들은 어떤 마음일까 많이 궁금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이나 큰아버지가 내가 커나가는걸 보는 심정이 내가 조카를 보는 그것과 똑같았을지 문득 궁금해질 때도 있었다. 그만큼 한 사람이 태어나고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된 후 성인이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것, 이라는 걸 요새 많이 느낀다.
극중 제이슨을 연기한 어린 친구가 커나가는 모습을 십이 년 동안 이나 관찰한 링클레이터 감독의 마음도 부모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마 그런 마음으로 찍었을 것 같다. 그러니 큰 사건 하나 없이 소소한 기록만으로 영화를 가득 채웠겠지. 아니면 감독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사람의 인생은 그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잠깐.. 이런 바보 같으니!
그러고 보니 이건 링클레이터 감독의 장기다. 비포 선 라이즈 시리즈를 만든 감독이라는 걸 이미 초반에 얘기해놓고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