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비슷한 부분, 장면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흔한 장면이거나 식상해 보일 수는 있겠다.
사랑인걸 알면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참을 수밖에 없었던 남과 여. 공유가 한번 도망치고 나중에는 전도연이 다시 외면한다. 서로의 현실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사랑을 하지만 소중해 보이는 가정을 깨기는 싫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전반과 중반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이어나가는 과정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장면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후반부에 메릴 스트립이 남편과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고서는 차문 손잡이를 꽉 쥐고 떨던 그 장면. 왜 그런지는 알았으나 마음이 울리지는 않았다. 명작이기는 하지만 워낙 옛날 영화라 연출과 화면이 촌스러워 덜 와 닿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를 보고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음.. 그래도 왜 바뀌었는지 물어본다면 한마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냥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한국 영화의 장면이어서 몰입이 쉬웠다고, 그래서 이제는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예쁜 화면만으로도 시선을 붙들어 맬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스토리는 별것이 없다. 그럴싸한 에피소드 역시.
이윤기 감독은 이 영화의 포인트가 배우들의 연기와 균형 잡힌 예쁜 화면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선택을 잘한 것 같다. 흥행을 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쉽게 흥행을 할 만한 요소는 없다. 인정할건 인정하자.
전도연은 ‘협녀’ 라는 의외의 선택으로 한번 넘어지더니 금방 감을 회복한 것 같다. 전작인 무뢰한도 영화 자체는 별로였지만 전도연은 빛이 났다. 이 영화에서는 두말할 필요 없다. 정말 전도연은 전도연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느낌이 나는 여배우다.
공유는 점점 완성형 배우가 돼가는 건가. 비슷한 또래의 조인성이나 강동원, 또는 원빈이나 현빈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 같다.
색깔도 다르다. 마냥 꽃미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무게감 있는 외모, 나직하고 높지 않아 안정감 느껴지는 대사의 톤, 튀지 않는 연기, 출연작이 그리 많지 않아 아쉽지만 용의자에서 도가니나 김종욱 찾기 같은 한 가지 장르에 치중하지 않는 필모그라피. 물론 겹치는 장르가 있기는 하다. 그는 아직 배우라기보다는 스타의 느낌이 강하고 회사에서 원하는 것도 있을 터이니.
이 영화에서 주연 두 사람의 연기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두 사람은 그걸 해냈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 이 영화가 흥행을 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직업과 사는 집 등, 보통을 넘어서는 부유한 설정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거의 개봉한지 이십년이 다돼가는 이정재, 이미숙 주연의 ‘정사’ 도 그런 면이 강하기는 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걸 개의치 않았다. 그런 점들이 그저 소품으로 보일만큼 두 주연배우의 정사신등 사랑장면이 농밀했으므로. 관객들은 마흔의 여배우와 이제 스물 중반정도 된 잘생긴 남자 배우, 그것도 처형과 제부의 섹스장면을 보러 간 것이었다.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장면들이었지만 어쨌든 본질은 처형과 제부가 오락실에서 섹스를 하는 것이니까. 아쉽게도 이 영화에는 그런 강력한 마켓팅 포인트는 없다. 혹시 공유의 매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예전 그때만 해도 이정재 같은 배우는 상당히 드물었지만 요즘은 너무 흔하다. 공유로서는 아쉬운 부분일수도 있겠다.
전도연의 예전 작품인 해피앤드나 스캔들과도 비교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나 애절한 러브 스토리는 다른 곳에서 건지고, 관객들이 쉽게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인 섹스 장면은 노골적으로 부각시켰으니까.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위험하게 넘나드는 장면들이 두 영화엔 많았다. 그런 연출이 싫어서, 그저 아름답게 담고 싶어서 그랬다면, 그게 남과 여를 연출한 감독의 의도였다면 할 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