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가 가르쳐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처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 보면 형편없지만 드라마 대본 한편, 영화 시나리오 한편을 썼다. 그리고 한동안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검색 창에는 ‘드라마 작가’라고 쳤던 것 같다. 그때 서울 여의도에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두 달 후, 그때까지 살던 수원을 벗어나 서울로 이사를 왔다. 교육원생을 모집하는 기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지원을 하고 합격을 해서 ‘기초반’ 수강을 하기 시작했다. 반년 단위로 수강을 마치고 상급반으로 옮겼다. 총 두 번의 상급반 진급을 하고, 마지막 관문인 창작반은 떨어졌다.
일 년 반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난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더 이상은 배울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모자란 건 끝도 없지만 배울게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어차피 글을 쓴다는 것도 결국은 혼자 하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모여서 수업을 듣고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혼자서 상상하고 혼자서 쓰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교육생이 많은 것 같았다. 상급반 진학에 떨어지면 원래 써뒀던 2지망, 그러니까 현재 듣고 있는 반에서 한 번 더 수강을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육원이 창작반까지 수료하고 나면 뭔가 명확하게 길을 열어주는 관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난 쿨하게 2지망 같은 건 쓰지 않았었다. 그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가 가르쳐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누가 가르쳐주는 대로 하기만 한다고 다 작가가 된다면, 세상 어느 작가가 밥벌이를 못하고 굶어죽겠는가.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것이다. 결국 작가들의 ‘감’이 승부를 가른다. 열심히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냉정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공모전이라는 것이 허울뿐인 것도 같다. 신춘문예처럼 이제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쓰지만 결정적인 한방은 부족한, 다 비슷비슷한 글들을 써내고 있으니까. 그래서 방송사 드라마 공모전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없어졌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없어진다고 그랬던 것 같다. 그쪽으로 관심을 끊은 지가 오래돼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같이 수업을 듣던 누나 한명이 있었다. 그 누나의 아는 동생 한명이 그 때쯤 공모전 수상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수상 한다고 곧바로 메인 작가로 등단하고 방송을 본격적으로 타는 건 그때 당시에도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였다. 그 누나의 아는 동생이라는 여자도 보조 작가를 한번 거친 후 누군가와 연속극 공동 집필을 한다는 말까지만 들었었다.
그쪽도 이제 전문 드라마 작가만이 아니라,
구성작가 출신들이 드라마를 쓰는 경우도 종종,
아니 이제는 꽤 많아졌다고 들었다.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 같다.
하긴 공중파에서 예능 프로그램 PD 하던 사람이 케이블로 옮겨가서는 드라마를 만드는 세상이니.
욕할 생각은 없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자가 많이 나와야 작품의 수준이 계속 올라가지 않겠는가.
당시에 우리 지망생들끼리 욕을 좀 했었다. 정정 당당하게 공모전을 통해서 데뷔를 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드물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하는 식으로, 그때의 우리끼리 하는 말로 낙하산식 등단을 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지금은 ‘교육원’도 ‘대학교’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학생장사, 졸업장 장사에만 혈안이 돼있는. 물론 진짜 배우고 싶어서,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서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다녀볼만 할 것이다. 특히 대학에서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건 그래봐야 일 년, 이년이다. 일주일에 한번 듣는 수업인데 배워봐야 얼마나 배우겠는가. 그냥 기본적인 초반 코스라고 생각하고 다니면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글을 쓴다는 건 평생 해야 하는 공부니까. 하지만 이거 얘기해주는 사람 별로 없다.
어차피 글을 쓴다는 것도 결국은 혼자 하는 싸움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