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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성 Sep 28. 2016

한번쯤은 다녀볼만한 아카데미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가 가르쳐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처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 보면 형편없지만 드라마 대본 한편, 영화 시나리오 한편을 썼다. 그리고 한동안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검색 창에는 ‘드라마 작가’라고 쳤던 것 같다. 그때 서울 여의도에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두 달 후, 그때까지 살던 수원을 벗어나 서울로 이사를 왔다. 교육원생을 모집하는 기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지원을 하고 합격을 해서 ‘기초반’ 수강을 하기 시작했다. 반년 단위로 수강을 마치고 상급반으로 옮겼다. 총 두 번의 상급반 진급을 하고, 마지막 관문인 창작반은 떨어졌다.


일 년 반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난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더 이상은 배울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모자란 건 끝도 없지만 배울게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딱 맞는 표현이 지금 생각났다. 


맞다. 


교육원이라는 곳은 물고기를 먹여주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딱 물가에 데려다 주기만 할뿐이었다. 


좀 더 하면 낚시 바늘에 먹이를 꿰매는 법을 알려주는 정도?




어차피 글을 쓴다는 것도 결국은 혼자 하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모여서 수업을 듣고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혼자서 상상하고 혼자서 쓰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교육생이 많은 것 같았다. 상급반 진학에 떨어지면 원래 써뒀던 2지망, 그러니까 현재 듣고 있는 반에서 한 번 더 수강을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육원이 창작반까지 수료하고 나면 뭔가 명확하게 길을 열어주는 관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난 쿨하게 2지망 같은 건 쓰지 않았었다. 그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가 가르쳐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누가 가르쳐주는 대로 하기만 한다고 다 작가가 된다면, 세상 어느 작가가 밥벌이를 못하고 굶어죽겠는가.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것이다. 결국 작가들의 ‘감’이 승부를 가른다. 열심히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냉정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교육원’도 ‘대학교’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공모전이라는 것이 허울뿐인 것도 같다. 신춘문예처럼 이제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쓰지만 결정적인 한방은 부족한, 다 비슷비슷한 글들을 써내고 있으니까. 그래서 방송사 드라마 공모전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없어졌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없어진다고 그랬던 것 같다. 그쪽으로 관심을 끊은 지가 오래돼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같이 수업을 듣던 누나 한명이 있었다. 그 누나의 아는 동생 한명이 그 때쯤 공모전 수상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수상 한다고 곧바로 메인 작가로 등단하고 방송을 본격적으로 타는 건 그때 당시에도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였다. 그 누나의 아는 동생이라는 여자도 보조 작가를 한번 거친 후 누군가와 연속극 공동 집필을 한다는 말까지만 들었었다.





그쪽도 이제 전문 드라마 작가만이 아니라, 


구성작가 출신들이 드라마를 쓰는 경우도 종종, 


아니 이제는 꽤 많아졌다고 들었다.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 같다. 


하긴 공중파에서 예능 프로그램 PD 하던 사람이 케이블로 옮겨가서는 드라마를 만드는 세상이니. 


욕할 생각은 없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자가 많이 나와야 작품의 수준이 계속 올라가지 않겠는가.





당시에 우리 지망생들끼리 욕을 좀 했었다. 정정 당당하게 공모전을 통해서 데뷔를 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드물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하는 식으로, 그때의 우리끼리 하는 말로 낙하산식 등단을 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유 없는 낙하산이야 욕을 먹겠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이야 밑천이 드러나면 금방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실력과 정정당당한 승부를 부르짖으면서 왜 그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쓰고 일분이라도 더 고민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자기들 말대로 실력으로 보여주면 됐을 텐데.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패배자들의 넋두리였을 뿐이라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는 다른 실험성 강한 드라마들도 얼마든지 방송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 나 역시 몇 년 만 더 끈기를 가지고 했더라면 최소한 아이디어라도 채택이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교육원’도 ‘대학교’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학생장사, 졸업장 장사에만 혈안이 돼있는. 물론 진짜 배우고 싶어서,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서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다녀볼만 할 것이다. 특히 대학에서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건 그래봐야 일 년, 이년이다. 일주일에 한번 듣는 수업인데 배워봐야 얼마나 배우겠는가. 그냥 기본적인 초반 코스라고 생각하고 다니면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글을 쓴다는 건 평생 해야 하는 공부니까. 하지만 이거 얘기해주는 사람 별로 없다.



어차피 글을 쓴다는 것도 결국은 혼자 하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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