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성 Sep 28. 2016

롤모델을 정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처음 듣는 작가의 소설이 예상외로 기가 막히면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해외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를 공부할 때 시작하자마자 정한 롤모델이 있었다. 바로 최완규 작가다. 요즘은 그리 드물지 않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 드라마작가는 별로 없었기에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살아온 과정도 나와 비슷해서 여러모로 ‘나도 잘하면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꿈을 꾸게 했던 사람이다. 본격적으로 교육원에 등록을 하고 작가 수업을 받으면서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포기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편이 빠를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입신양명’ 하기 위해서는. 그 즈음부터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새로 알게 된 소설가도 많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국내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기욤 뮈소이다. 
잘 빠진 상업 영화 한편을 보는듯한 감각적인 전개와 기막힌 반전, 
그리고 로맨틱한 문체가 장기인 소설가다. 
그와 그의 작품에 푹 빠져들었었다. 
내가 그의 소설을 접했을 때는 이미 여덟 권 정도의 책을 냈을 때라 그전에 냈던 그의 작품을 한 번에 몰아서 읽었다. 
그러다보니 이게 저건지, 저게 이건지 헷갈리는 때도 있었다. 
그런 작품들은 몇 달 있다가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그러고서야 완벽히 정리가 되고 머릿속에 내용이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그의 소설은 모든 작품을 최소한 세 번씩은 읽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재미가 있다. 
나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는 문장들에서 가끔 기욤 뮈소의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고. 물론 나만의 착각일수도 있다. 내가 그런 어마어마한 소설가와 벌써 비슷해졌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속으로 행복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그의 작품도 이제 조금씩 식상해져갔다. 나와 있던 작품들을 다 읽으니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지만, 일 년에 한번 정도였다. 당연했다. 한사람이 그 정도 분량의 소설을 일 년에 한 번씩 꾸준히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안다. 일 년에 한번 정도, 연말쯤에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예전만큼의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이제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똑같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정말 대단한 작가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아버렸다.


일본 작가 중에는 보통 무라카미 하루키가 국내에서는 제일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난 그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한다. 하루키의 소설이 조금 순수 예술적이라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중 예술에 가깝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다재다능한 작가라는 생각이 몇 년을 주기로 한 번씩 든다. 


그 주기라는 것이 생긴 건 그가 쓴 작품의 수가 워낙 많아서다. 


처음 몇 권을 읽고 나서 탄성이 절로 나왔었지만, 


그 후 고만고만한 작품을 읽고는 조금 실망했었다. 


그러나 어쩌다 딱히 읽을게 없어서 믿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무심코 한권을 집어 들면 생각지도 못하게 그 


소설이 내 마음을 하루 종일 흔들어 놓는다. 


그 때부터 그의 소설을 고르는 기준이 나름대로 생겼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 나에게는 딱히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작가가 없다. 그럴만한 사람이 너무 많아져 버린 게 이유인 것 같다. 존경할만한 사람이 많은 건 축복이다.




나는 그 유명한 공지영 작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데뷔작인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너무 딱딱했던 탓일까. 


그때의 내 감상은 그랬다. 


세여자의 이야기가 그다지 재미는 못 느꼈으니까.


몇 년 후 ‘도가니’라는 소설을 우연히 읽고 충격을 받았다. 


잠깐 들여다보고는 다음날 출근 때문에 잘 생각이었는데 절반을 넘게 읽어버렸다.




이제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한 것 같다.




국내 소설 중 생각보다 훌륭한 작품이 많다는 건 너무 늦게 알았다. 


숙제 하듯이 읽어내려고 했던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시리즈는 나를 많이 바꿔놓았다.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처음 듣는 작가의 소설이 예상외로 기가 막히면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해외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켓팅의 영향으로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의 허무함이란.. 그러면 한동안 또 모르는 작가의 작품은 손이 잘 가지를 않는다. 그럴 때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선택한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알아간다.




그렇게 알게 된 작가가 이제는 제법 된다. 독서 애호가라면 서로가 좋아하는 작가와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고 싶은 욕구가 생길 정도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그럴 정도로 책을 읽는 사람이 없다.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어쩌다 우연이라도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마주 앉아서 토론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지금 나에게는 딱히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작가가 없다. 그럴만한 사람이 너무 많아져 버린 게 이유인 것 같다. 존경할만한 사람이 많은 건 축복이다.


이제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한 것 같다. 더 이상 누구처럼 되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누구처럼 쓰는 일도 별로 없다. 긍정적인 변화인 것 같다. 작가에게는 독창성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런 고집이 점점 생기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생긴, 아주 긍정적인 변화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번쯤은 다녀볼만한 아카데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