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를 보고 살맛 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니
두 번 보았다. 두 번째는 의도하지 않은 관람이었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첫 번째 관람 후 바로 리뷰를 쓰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 정리가 안돼서였다.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내가 뭘 느꼈던가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국내.. 관련자 초청 시사회였던 것 같은데.. 스스로 글 쓰는 허지웅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방송도 하는 허지웅의 리뷰를 보았었다. 그전까지 그 영화에 대한 정보도 관심도 없었지만, 그 리뷰 하나로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조금 생겼다.
이 년 전 우리 국민들을 절망에 빠트렸던 그 사건.. 허지웅의 리뷰에서 강한 끌림을 느낀 건 사건이 생긴 후 벌어지는 너무나 대조적인 상황을, 영화를 보지도 않은 내가 몇 줄의 글만으로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톰 행크스.
이 두 사람의 협업이라는 것도 관람의 불씨를 댕기게 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역할에서 확실한 거장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재난 현장에 영화적인 분량을 오랜 시간 분배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가 의도했던 게 그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비상 착수부터 전원 구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실제 사실도 다른 재난 영화 같은 코스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게 했을 것이다. 뭐 클린트 이스트우드 라면 충분히 그림이 나올 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어도 재난 현장에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알기로 그는 사건 그 자체보다는 사건을 둘러싼 인물의 심리 변화에 신경을 많이 쓰는 감독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이라서일까.
할애가 많이 되지 않은 구조 장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년 전 세월호 사건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것 같은,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 비슷한 광경이어서였을 것이다. 태어나서 접한 것 중 유일하게 감정적으로 몰입이 됐던 그 사건, TV에 나오는 건 조금씩 바닷속에 잠겨가는 세월호의 모습뿐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너무 단순한 그림이어서 더욱 오버랩이 됐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이십몇 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상착수 후에 전원 구조에 성공한 시간이. 이 년 전 그때, 세월호가 잠겨가고 있었을 때, 우리나라 정부기관은 뭘 하고 있었는지..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주인공인 설리와 부기장, 그들과 대립하는 사람인 국가 안전처 공무원들.
대립하는 이유는 왜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승객들을 위험한 상황에 빠트렸냐는 것. 공무원들은 수십 년간의 비행에서 나온 조종사의 직감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들이 맹신하는 데이터는 설리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실제 하지 않았던 사람이어서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건 마지막에 인정을 하지만. 의외로 정말 쿨하게 인정한다.
국가적인 영웅이 됐지만 오히려 국가로부터는 범죄자 취급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그러나 오히려 그 사건을 접한 국민들이나 탑승했던 승객들로부터는 더 없는 찬사를, 설리는 받는다.
평생 비행만 한 베테랑 조종사이지만 조금 무뚝뚝한 남자인 설리라는 캐릭터를 톰 행크스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표현한 것 같다.
방송 중 메이크업을 해주는 딸뻘의 여자가 “이건 엄마가 전해 달래요.”라며 볼에 가벼운 키스를 해주는 것에 잠깐 놀라지만, 이내 아내가 있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는 모습이나, 호텔로 들어와서 총지배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갑자기 와락 끌어안을 때 “대체 무슨 일이지?”라며 어리둥절해하는 그의 선하고 순진한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나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륙 후 비상 착수를 성공한 케이스는 역사 상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따라서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다고. 그전까지는 그랬었다고 한다.
불길함을 감지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기도를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는 승객들.. 난 비행기를 많이 타보지 않았고, 사실상 비행기 사고는 정말 ‘남일’이나 ‘뉴스 속 이야기’처럼 느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착수 전 비행기 안의 조금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탈출에 성공한 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승객들과, 항공 관계자들, 그리고 한두 명의 설리에게 직접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허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들, 오랜만에 살맛 나는 기분 든다고 말하는 택시기사의 모습들.. 에서 난 정말 많이 느꼈다. 그 사람들이 어떤 감정이었을지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연출과 연기의 힘이었을 것이다. 연기를 이끌어낸 스토리와 연출을 만들어낸 감독의 힘이 비교하자면 조금 우위에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난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이 그나마 비슷할까? 그러고 보니 두 감독 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을 사랑하고 그런 이야기를 잘 만드는 감독들인 것도 같다.
잘못은 했지만 합리적으로 사실이 밝혀지면 그나마 인정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같은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긴 뭐가 진실인지도 알 수 없는 것들이 판을 치고 그래서 언론이라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이 현실에서는 그 마저도 여러 가지 가정을 해야 할 것이다.
비상 착수에 성공한 후 설리가 조종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한 말이다.
“탈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