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아포칼립스
내가 보기에 그건 아포칼립스의 등장이었다.
스포가 있을 수도 있으나 그리 대단하지 않은 부분들이니 보실 분들은 보시길. 딱히 스포라고 할 것도 없지만.
사실 기대를 굉장히 많이 한 작품이었다. 원작 만화는 보지도 못했지만, 영화는 시리즈 골수팬이기도 했고, 전작들에서 단 한 번의 실망도 한 적이 없는 게 그 이유였다. 프리퀄 시리즈, 그 전의 원작 시리즈 중 세 번째인 엑스맨 팬들은 가장 엉망이었다던 ‘최후의 전쟁’을 세 편중 가장 재미있게 본 나였으니..
구성의 독특함이야 뭐 실험정신 정도로 봐줄 수도 있다 치자.
최후의 돌연변이 아포칼립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에 나왔던 쿠키 영상에서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햐.. 정말 헐리웃 사람들의 상상력은 끝을 알 수 없구나.”
어떻게 피라미드를 돌연변이의 초능력으로 쌓았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건지. 전혀 억지도 같지도 않았던 게, 피라미드는 잘 알다시피 건축 자체가 아직도 불가사의인 그야말로 미스테리한 ‘작품’ 아니던가.
그래서 억지스럽지도 않았을 뿐더러, 후속 작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아포칼립스는.
돌연변이이자, 고대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존재, 그래서 그가 등장해서 보이는 능력들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신’ 이 선보일만한 능력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내가 억지스럽다며 시리즈 최초로 실망을 느낀 부분은 딱 몇 가지였다.
아포칼립스가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주어서 그 전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을 갖게 된 매그니토의 갑작스러운 압도적인 업그레이드가 바로 그중 하나다.
뭐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이미 어느 정도는 바꾼 미래를 예고했으니.. 그것도 그렇다 치자.
두 번째는 어이없게도 명색 ‘신적 존재’ 인 아포칼립스가 퀵실버에게 얻어맞는 장면이었다. ‘가까스로’ 그의 동작을 파악하고 잡아두기는 했지만, 신이라면 애초에 단순히 빠르기만한 퀵실버 정도로는 애초에 접근조차 불가능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신적 존재’ 는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된 매그니토의 총공세와 사이클롭스의 각성한 레이저도 뚫고 들어오지 조차 못하게 방어막으로 간단하게 막아낸 ‘엄청나게 강한’ 놈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퀵실버의 주먹질과 발길질에는 잠깐이긴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아마 이번 영화의 최대 미스가 아닐까?
세 번째는 다소 유치한 비쥬얼이었다.
처음 느꼈다. 엑스맨의 초능력 향연이 이렇게 유치할 수도 있다는 걸.
물론 물량 면으로는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유치했다.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 얘기는 이쯤 해두자.
마지막으로는..
이런 저런 이유에도 용서가 안 되는 그 마지막은 바로..
잠깐 어이없고 우스꽝스런 요소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고대의 신적 존재’ 답게 별 어려움 없이 엑스맨들을 막아내던 아포칼립스가 ‘진 그레이’ 의 마지막 ‘얍!’ 한 번에 소멸한다는 것! 뭐 그녀가 그만큼 강력한 존재이며 ‘최후의 전쟁’ 에서도 어마어마한 능력치를 보여준바 있으니 안 될 것까지야 있겠냐만.. 그래도 ‘신’ 인데? 그 역시 초능력으로 ‘신적 존재’ 로 추앙받던 돌연변이일 뿐이라면, 애초에 그게 구성된 컨셉이라면 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아, 또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원래 영화 엑스맨은 매번 새로운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펼치는 초능력으로 인해 새로운 ‘보는 맛’ 이 있었다. 항상 한, 두 명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그래서 “오!” 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전혀 없었다. 전혀.
전작에서 살짝 맛만 봤던 퀵실버의 스피드 역시 신선하지 않았다.
누군가 얘기했던 캐릭터 간 갈등의 부재도 이번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이유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모든 시리즈가 그랬었는지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퍼스트 클래스’ 에서는 선을 택한 프로페서X 진영과 상대적으로 악으로 보이는 매그니토 진영이 생기기 이전, 이제 막 엑스맨의 형태가 조금씩 갖춰지는 성장 드라마의 시점이었고, 그것을 보는 재미만도 쏠쏠했다.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앞으로 생겨나게 될 갈등 구조에 대한 밑밥을 조금씩 깔기도 한다. 그러다가 후반부 악을 처단하기는 하지만 돌연변이를 위험존재로 보는 기존 인간 집단으로 인해 이뤄지는 매그니토의 각성과 그로 인해 생기는 팀 간의 균열, 갈등, 그리고 최악의 상황, 그리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의 모면. 흠잡을 데 없는 구성이었다.
그리고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잠깐..
얘기하다보니 엑스맨 시리즈의 전부를..
이 정도로만 하자. 아무튼 기억이 전부 나는 건 아니지만 그 전 시리즈는 스토리 개연성은 물론이고 캐릭터간의 갈등에 대한 설득력은 기본이었다. 물론 이번 시리즈가 그게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취약하다.
하나 건진 건 있다. 그건 울버린의 특별 출연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전작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둔 셈이고, 다음 시리즈를 향해 나갈만한 떡밥은 던져 놓은 셈이니. 그건 쿠키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제니퍼 로렌스가 매력이 있는 배우라는 것 역시 이번 영화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된 부분이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미스틱’ 이란 캐릭터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건 여배우의 매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니퍼의 미스틱은 굉장한 매력을 발산한다. 한, 두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으니 그건 기회가 있으면 다음번에 하기로 하고..
그녀는 너무 이런 나이에 떠버린 여배우라, 솔직히 그간 평가에 대한 반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배우로서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어필한 배우는 제니퍼 로렌스와 휴 잭맨 둘뿐이라고 생각한다.
난 브라이언 싱어의 팬은 아니다. 그가 영화를 좀 만드는 감독이라는 것 정도만 안다. 그가 일편과 이편을 연출했고, 꽤 오랜만에 전작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통해 컴백을 한 것도 안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작품성도 오락성도 있는 오락영화로서는 상당히 수작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일편과 이편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브라이언 싱어가 꽤 생각이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편을 기대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이번 편은 그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브라이언 싱어, 그가 이번 영화에서 선택한 아포칼립스라는 캐릭터가 시리즈를 앞으로 흥하게 할 것인지 망하게 할 것인지.. 그건 좀 더 지켜봐야할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