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예전엔 지나치게 현실적인 어른들이 ‘꼰대’ 취급을 받았었다. 젊은이들의 꿈과 이상을 비웃는 자들, ‘그림이나 그릴 시간에 수학문제라도 하나 더 풀어’ 혹은 ‘정신 차리고 살아, 쓸데없는 희망 같은 거 갖지 말고’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그런데 요즘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이상적인 말을 하는 어른들을 젊은이들이 꼰대 취급하는 것 같다. 조기숙 교수가 갑질 하는 모녀고객에게 주차 알바생이 무릎을 꿇은 사건에 트위터 한번 올려서 집중 포화를 받는걸 보고 든 생각이다. 사실은 나도 똑같이 생각했었다.
‘아니 왜 무릎을 꿇어? 꿇으란다고 꿇어? 도대체 그 여자들이 뭔데?’
그러니까 요즘 이런 말을 하면 꼰대가 되는 것인가? 전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을의 서러움을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구조적인 문제점은 눈감고 개인만 지적하는 그런 재수 없는 어른이 되는 거란 말이지, 요즘은?
그런데... 난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스무살 나이에 무릎을 꿇으면 살면서 얼마나 더 많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거지?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투표를 하라고 하는 어른들도 대표적으로 꼰대 취급을 받는다. 얼마 전 한 20대가 쓴, 거의 격문에 가까운 글을 읽었다.
‘우리 보고 정치에 관심 가지라는 이 386꼰대들아. 우리는 데모 적당히 하고 놀다가 졸업해도 취직되던 너희랑 달라. 정치에 무관심한 우리를 건드리지 마’ 라고.
알겠어, 무슨 말인지. 나는 386이야. 그런데 20대에게 투표를 하라고 하는 말은 현실적이 되라는 것보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에 가깝지 않을까. 누굴 찍어도 상관없지만, 너희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들 가졌다고, 왜 포기 하냐고 말하는 게 그렇게 꼰대 짓인가?
선거라는 건 분명히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데, 그걸 왜 포기 하냐고 말하는 것이 꼰대라면, 나는 기꺼이 꼰대가 되겠다.
오늘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하교 시간의 고등학교를 지났다. 까불고 떠들면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10대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나이가 들면 무조건 어린 사람들이 부럽기 마련이다. 그들이 탱탱한 피부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시간 때문이다. 애들에게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얼마나 너희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사회 이동의 사다리가 얼마나 없어지고 있는지, 전공 선택은 어떻게 해야 현명한지 따위의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데이터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