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PD 수첩
난 언젠가부터 정부는 물론이고 경찰이나 검찰, 언론에 대해서도 심한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건 아마 MB 때 중반부터 일 것이다. 어차피 그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일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인권을 유린당하고 사유재산을 강탈당하며,
정권의 하수인이 됐다 비참하게 버림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사연을 알게 된 후 이런 건 무조건 사람들이 알아야 된다는 생각에,
갖은 고초를 감수하며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에 목숨 거는 몇 안 되는 사람들.
난 텔레비젼 자체를 많이 보지 않는다. 그나마 즐겨보던 예전에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가끔 감동적인 시사 프로그램을 가끔 보기는 했지만 요즘에는 그것들도 끊었다. 텔레비젼보다는 영화를 보라는 어떤 사람의 말, 텔레비젼보다는 서재가 있는 거실, 같은 폼 나는 말에 현혹되어서였다. 일상에 쫓기는 가운데 좋은 영화나 책을 볼 시간조차도 내기 힘들다보니 텔레비젼은 어느새 뒷전이 됐다는 그럴싸한 핑계도 있긴 했지만.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굵직한 사건들. 제목만 들어봐도 그럴싸했지만 방영 당시엔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후, 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고난을 알게 된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물론 만든 사람의 고생을 생각해서 보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진실, 그것들을 제대로 알고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나보다 더 심하게 농락당한 삶을 사는 ‘약자’ 들이 세상에는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런 지나치게 처절하게 유린당한 약자들의 사건만 조명하는 건 아니었지만.
책속에는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핍박을 당했던 그간의 이야기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권력의 시스템, 그리고 작가 및 사회 각계 지도층들의 그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규탄하는 선언문 같은 글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실제 떠들썩했던 몇 개 사건을 만들어 나갔던 과정들, 그 모습들이 굉장히 자세하게 수록돼 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실제 다뤘던 사건들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국무총리실의 한 민간인 사찰 사건과 영화의 소재로도 이용됐던 ‘검사와 스폰서’ 편이었다.
이 책의 내용들이 얼마만큼 사실인지에 대해 받아들이는 건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걸 탓할 생각도 없다. 관심을 가지기에만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세상이니까. 앞으로 더 그럴 가능성도 크다.
그때 이미 난 당시 여당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갖고 있었고, 어떻게든 정권 교체를 하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돼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물론 선거와 후보자에 대한 자세한 배경 지식 같은 건 없었지만. 어쨌든 2016년 현재 대통령인 그 사람만은 안 된다는 생각이 상당히 강했었다. 그건 그냥 느낌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그 느낌은 적중했다. 당선 이후로 정말 말도 안 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이 책의 사실성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사실이어도 뭐 어쩌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대들은 대한민국 상위 10퍼센트라고 본다. 사실인 걸 이미 알고 있었다거나 사실이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들, 그들은 상위 1퍼센트!
하지만 잊지 마시라. 세상이 상위 1퍼센트에 의해 지배되고 부의 쏠림도 10퍼센트에 집중되지만, 나머지 90퍼센트가 없다면 세상은 결코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90퍼센트가 각성을 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라는 말을 했다가, 골로 간 한 여왕이 있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박정희도 한방에 갔고, 한때를 지배했던 전두환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았다. 최근 꽤 오랜 시간 우리에게 고통을 줬던 누군가도 결국은 왕좌에서 내려왔고 언젠가는 초라한 말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아직 결혼 한 번 못해본 전직 독재자의 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