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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이 Apr 21. 2022

아빠의 평범한 하루 기록

 '프로 N 잡러'


내가 현재 갖고 싶은 타이틀이다. 그중에서 한 주에 최소 이틀 정도는 혼자 아이를 돌보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육아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도움이 정말 컸다. 아내 역시 처음인 게 분명한데 하나부터 열까지 어찌나 꼼꼼하고 지극정성인지, 첫째는 그 흔한 돌 치례도 제대로 안 거치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번 온 가족이 드러누웠지만. 

그래도 역시 엄마는 엄마인 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아토와 종일 함께 있는 날 하루의 루틴은 생각보단 꽤 간단하다.

아, 다시 말하자면 전체적인 하루 '구성'이 간단하다는 뜻이지 디테일을 풀자면 끝도 없다.


 이제 19개월 차인 첫째 아토는 보통 오전 7시 전후로 눈을 뜬다. 이제 어느 정도 감정 표현을 하기 시작한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거실로 나가자고 엎치락뒤치락 침대 위를 누비며, 손가락으로 방문을 가리키기도 하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건다.  "까가!", "나가꾸야?, "아가!" 하면서 말이다. 거실로 나오면 일단 밤새 축축해진 기저귀부터 뽀송뽀송 한 것으로 갈아준다. 포트에 있는 미지근한 물도 한 모금 먹인다.


 나와 아내 서로가 출근하기 전날 밤은 온전히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쉬는 쪽이 안방에서 아토와 같이 자고 다른 쪽은 맞은편 작은 방에서 조용히 따로 잔다. (아토는 지금도 새벽에 종종 깨서 왜 옆에 없느냐며 잠투정 섞인 짜증을 부려서 한두 번 깨야 되는 건 이제 일상이다.) 거실로 나와 기본 세팅(?)을 마친 아토는 아침부터 뭐가 그리 신나는지 쿵쿵 대며 다른 쪽이 자고 있는 작은방으로 돌진한다. 문을 벌컥 열고 이부자리로 뛰어들며 내가 자고 있을 땐  "아-빠-!!", 아내가 있을 땐 "엄-마-!!" 하고 몸을 비비고 까르르까르르 웃어댄다.  아침부터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어영부영 일어나 눈곱이라도 떼고 정신을 좀 차리면서 다 같이 먹을 아침을 준비한다. 한동안 밥을 입에 넣어주기만 하면 뱉어대던 아토가 요즘엔 곧 잘 받아먹어서 기분이 좋다. 요리가 업인 내가 주로 집의 주방과 밥상을 책임지고 있지만 아토의 '맘마' 만큼은 아내가 만들고 있다. 각종 고기와 야채를 정성껏 다져서 큐브로 각각 얼려놓고 음식을 만드는데, 시기별로 다르게 먹어야 하던 아이는 이제 어느 정도 삼삼한 간으로는 웬만한 걸 다 먹게 되었다.


 밥을 다 먹고 아내가 출근을 하면 오전 놀이 타임이 시작된다. 보통 정오 즈음 낮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그전까지 무엇이든 하며 놀아 주는 시간을 말한다.  블록 놀이, 자동차 놀이, 화장대 놀이, 스티커 놀이, 그림 놀이, 미끄럼틀, 그네, 책 읽어주기 등등..  아직은 아토가 소통이 원활할 만큼 큰 게 아니라, 그때그때 원하는 것에 대해 뉘앙스를 보일 때 캐치해서 해주는 편이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

 

 요즘 아토는 TV를 조금 보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아이들이 어릴 때는 TV나 스마트폰 같은 것을 보지 않게 키우자고 아내가 신신당부했건만, 너무 체력이 바닥일 때 몰래 한 번씩 편법(?)으로 보여주던 게 덜컥 버릇이 되어버렸다.


  '콩순이'라는 유아용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콩순이란 4-5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님, 친구들과 지내는 일상을 아이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3D 만화이다. 그 안에서도 끝나면 나오는 엔딩 노래에 맞춰 콩순이가 춤을 추면 "코- 코- 코-" 하며 그 춤을 따라 추는걸 더욱 좋아한다. 신기한 건 다른 작품을 틀어주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코코(콩순이)를 틀어달라고 있는 짜증을 다 낸다는 것이다. 정주행이 몇 번째 인지 모르겠으니 분명 내용을 아직 이해 못 하거나 그냥 그 만화 자체와 사랑에 빠진 게 틀림없다.


 오전 내내 TV를 조금 보다가, 장난감도 가지고 놀다가, 간식도 먹다가 하다 보면 낮잠을 잘 시간이 된다. 침대로 데리고 들어가 뉘인다. 기분이 좋을 땐 까르르 거리고, 별로 안 좋을 땐 자기 싫다고 울기 시작한다. 한참을 토닥이고 쓰다듬다 보면 나도 같이 잠이 든다. 아침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는 상황으로 두 번째 눈을 뜬다. 거실로 데리고 나와 준비해둔 맘마를 먹이고 나면 저녁을 먹이기 전까지 놀아줘야 하는 가장 긴 텀이 생긴다. 나가서 놀 시간이다. 보통 날씨가 나쁘지 않다면 차 없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아도 늘 아토를 데리고 나간다. 안 그래도 코로나 시국에 집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아토에게 조금이라도 상쾌한 바람, 따뜻한 햇살, 더 넓은 세상을 계속 보여주고 싶어서 이다.


 가방에 기저귀, 손수건, 물병, 간식 등을 빠짐없이 채우고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힌다. 요샌 혼자 입고 벗으려다 잘 안되면 "안대!" 하며 가져오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체력이 좋아도 보폭이 좁은 아토는 아직 오래 걷기 힘들기 때문에 유모차에 태워야 한다. 어느 날은 동네 놀이터, 어느 날은 공원, 조금 도전 정신이 드는 날에는 한참을 걸어야 하는 큰 멀티플렉스에도 데려간다. 바깥 외출을 같이 하게 된 건 아직 길지 않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함께 있을 때 행복함을 더 많이 느낀다. 내 품에 살며시 안기던 그 작은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서 나와 데이트 같은 걸 하고 있는지. 아빠와 친해지는 중요한 시기라길래 더 많이 친해지고 더 많이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며 장을 같이 본다. 내리고 싶어 해서 풀어주면 마트에 있는 모든 게 자기 것이 되는데 그럴 땐 아직 못 먹는 거라도 꼭 하나씩 사주고는 한다. 내 아이가 요만큼 컷을 때 마트에 오면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사온 것들은 한참을 찬장에 박혀있다.



 집에 돌아오면 옷을 편하게 다시 갈아입히고 마지막 맘마를 먹인다. 이제 조금 도와주면 혼자 어설프게 젓가락질도 해서 입에 넣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흐뭇해하며 동영상을 찍어 아내에게 전송한다. 맘마를 다 먹이고 아토가 잠시 혼자 놀 수 있게끔 거실 놀이방에 풀어놓고 나면 매일 해야 되는 집안일이 기다린다. 유아 식기와 빨대컵 열탕 소독, 분유 포트 물 갈기, 빨래 돌리고 정리하기 등이 끝나고 나면 아이를 씻길 목욕 세트를 준비한다. 시간이 가장 빨리 가는 순간이다.


 늘 아토를 씻길 때면 아내 생각이 난다. 꾸준히 운동도 하고 몸집이 비교적 큰 내가 힘들다고 느낄 정도인데 평균에 비해 키나 체구가 조금 작은 우리 아내는 홀몸도 아닌데 얼마나 힘이 들까. 아토를 씻기고 로션도 발라주고 머리도 말려주고 새 옷으로 싹 갈아입히면 정말 하루 일과가 거의 끝이 난다. 이쯤 되면 보통 저녁 6시 에서 7시 사이가 되는 것 같다.

아토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1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만큼 애착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은은한 조명을 남겨둔 채 소등을 한다. 아토에게는 멸균우유 한팩을 먹이고 '치카'까지 시킨다. 이제 자야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낮잠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을 땐 까르르, 별로 안 좋을 땐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그냥 울기만 하던 아토는 이제 "안 자꾸야!"라고 열심히 발음해가며 때를 쓸 때도 조금 생겼다.  해가 지고 어두컴컴해져 눈을 떠도 앞이 보이지 않는 방 침대에 자려고 같이 누워 있을 땐 하루 중 가장 노곤한 순간이 찾아온다. 아토는 옆에서 잠들기 전까지 뒹굴 뒹굴 혼잣말을 해대며 놀고 있고, 나는 그런 아토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다. 지난날에 대한 생각, 오늘 내가 이 아이에게 잘해주고, 잘못해준 것들에 대한 생각, 앞으로 에 대한 생각까지.


 '육아가 힘들다'라고 생각하는 시기는 조금 지났다.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많이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시간은 빠르고 아토도 정말 금방금방 큰다고 느낀다. 불과 지난주에 못하던 것을 이번 주에 하는 걸 보고 아내에게 놀라움을 토로하는 경험도 빈번해 지니까 말이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 속에 잠겨 있다 보면 어느새 새근새근 아토의 예쁜 숨소리만 들리게 된다.  

육아 퇴근을 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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