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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M Dec 01. 2020

질투는 나의 힘

이유를 알 수 없는 솔직한 감정


기타가와 우타마로 (喜多川歌磨), <찻집의 2층에서>, 1788년, 영국박물관, 런던





여자면서 둔한 사람은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질투라는 감정이 단순히 예민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쩌면 수없는 많은 사람들이 질투라는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알아채지 못할 뿐,


나는 이제 서른여섯 살의 해넘이를 하고 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고 마흔이라는 숫자가 점점 다가올수록 내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을 이제는 왠지 모르게 외면할 수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이 먹을수록 더욱 보이는 옆 사람의 젊음과 청춘이 처음에는 부럽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미묘한 질투라는 감정으로 변질이 되기 시작했다. 부러움과 질투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를 두고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두 가지의 감정을 명백하게 구분하기가 몹시 어렵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느낌의 차이라고 단순히 말할 수도 없다.


요즘의 나는 분명 연기가 자욱한 방 안에서 손을 더듬으며 무언가 찾고 있는 것 같다. 이 방을 빠져나가기 위한 열쇠인지 아니면 이 방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독면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열심히 더듬으면서 찾고 있다. 가질 수 없는 시황제의 불로초를 찾는 심정이 이러했을까, 그냥 밑 빠진 독에 이유를 모른 채 감정을 부어 넣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이 피폐해져 가고, 이상하게 퇴근길 차 안에서 갑자기 무거워지는 머리를 감당할 수 없기 시작했다. 특유의 자기 계발에서 오는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매일같이 웬 추악한 질투의 신, 젤로스만이 나의 어깨를 감싸고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더욱 추악한 모습은 이 모든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이다. 솔직하게 피하고 싶은 대상에게 네거티브 한 사인을 보내서 질투를 유발하는 요인으로부터 멀어지면 마음이라도 차라리 편할지 모른다. 그렇게 한다면, 누가 나를 질투의 화신이라 부른다 해도, 누군가가 저 여자는 쓸데없이 질투를 하고 있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나는 그 대상을 보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가끔 질투라는 감정이 갓 잡은 물고기가 바닥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우 강렬하고 순간적이며 주체할 수 없기까지 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나를 보통의 껍데기에 가둬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내 속에서는 젤로스가 펄펄 끓어 날뛰는데 우아한 셀레네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정말 처절한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사회에서 몇 번의 질투를 했고, 그 질투를 가두기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가면을 매 순간 썼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유치한 감정 놀이라고만 생각하지 말라. 떠나가려는 젊음이 대체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하길래 내가 그것을 가진 누군가에게 이 비통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심오한 감정인가.


질투를 하고 있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위해 손을 겨누었다면, 잠시 멈추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질투에서 느껴지는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것인지, 당신에게 그 감정이 언제 다가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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