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사진이 있었다. 그건 연속을 창조해내는 불연속의 순간이다. 나는 둥그렇게 말린 너의 몸을, 얄팍한 담요만 하나 걸친 너의 나신을 바라보기 위해 가파른 계단 몇 개를 걸어 올라갔다. 온전히 내려다보기만을 위해서. 새벽의 공기처럼 차갑고 투명한 유리 난간에 기대어 육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거냐고 묻던 너를 필요로했는데, 그때만큼은 너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정작 요구받을 때는 없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너는 곤히 잠든 채 내 시선에 너의 육체를 내어주고 있었으므로, 나는 너에게 사랑을 말할 수 없이 다만 느낄 뿐이었고 찰나의 매혹처럼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으며, 결코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없으리라. 그러나 동시에, 나를 감싸는 이 절대적인 사랑의 느낌이 너와 나의 관계로부터 기인하는지 단지 이 시선으로부터 기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벌거벗은 육체를 높은 곳에서 고요히, 그리고 무한히 바라보는 이 시선은 그 자체로 사랑을 의미하는 건 아닌지. 나는 우연히 그 시선을 획득했을 뿐이고, 둘 중 하나가 이 파리한 균형을 깨는 순간 사랑은 온데간데 없이 흩어질지도 몰랐으므로 나는 이 순간을 만끽하는 대신 어떤 방식으로든 남기기로 마음먹었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사진을 남긴다는 건 무한의 시간에서 유한의 시간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어쩌면 무한할 수도 있었던 기회는 사진에게 할애되고, 나에게 남는 건 필멸의 법칙을 길어올리는 시간의 수레바퀴이다. 이제는 기하학적 도형과 인터페이스로 대체된 셔터가 내 손가락 앞에서 처형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셔터가 작동하게 되면 사진은 어떤 방식으로든 전과 후를 나눌 것이었다. 무한성을 빼앗긴 나의 시간은 한없이 늙어버리게 될 것이고, 무한성의 공간으로 들어간 사진은,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영혼의 성분을 어느 정도는 갈취할 것이므로.
나는 사진을 찍었고, 사랑의 가치를 시선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도통 사랑할 줄 모르거나, 사랑을 믿지 않거나, 혹은 무기력한 허무주의자처럼, 인간이 사랑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지도 몰랐다. 나는 대개 사랑을 부르짖는 것들은 음악이든 미술이든 농담이든 소설이든 싫어했으므로. 그런 것들을 마주치면 나는 내가 사랑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이유는 사랑을 저딴 식으로 팔아넘긴 놈들 때문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니 일시적으로 얻은 사랑의 시선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만 했기에, 나는 사진 찍기를 선택한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이제 잦아들었다. 나는 계단을 다시 타고 내려와서 네 옆에 누웠다. 나도 벌거벗고 있었고 나는 너의 숨으로 체온을 회복했다. 잠시 무한을 얻은 동안 내 피는 한치도 돌지 못했던 것이리라. 가랑이와 팔꿈치, 목덜미, 겨드랑이. 네 피부가 접힌 모든 곳은 축축했고, 그 사이로 나는 팔과 다리를 밀어넣었다. 나는 미치도록 슬펐다. 네 땀과 체온을 공유하는 순간 나는 네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너는 잠에서 깨지 않았으므로, 바로 방금 너를 사랑했다고, 미친듯이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대로 죽고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네가 눈을 떴을 때 내 시체를 마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 생각을 거둬들였고, 네 등줄기에 흐르는 땀방울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이 땀에 희석되어 네 피부를 타고 흐르는 순간 너는 손을 젖혀 정확히 그것을 닦아내며 말했다. 이리와, 같이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