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

따스하고 다정한 모스크바 사람들

by 지구별 여행자

미국 시애틀과 뉴욕, 상하이, 말레이시아 페낭, 짧게는 두 달씩 단기로 거주한 파리, 방콕, 캐나다, 하와이, 도쿄까지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살아보았다. 그 뿐인가, 유럽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보츠나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랍에미리트, 세이셸까지 정말 많은 나라 여행을 다녀보았다.


아이를 데리고 꼭 한 번 살아고픈 도시도 있고, 마음의 고향으로 느껴지는 곳도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 도착한 순간… 모스크바가 내 인생 최고의 도시로 등극해버렸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친절한 사람들” 때문이다. 나도 남편도 해외생활을 이미 10년 넘게하고 있어서 외노자,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으로 낯선 이국에 살아가는게 녹록치 않음을 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일상을 이어 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답답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상하이에 살 때 초반 몇 년은 공황장애가 올만큼 마음 고생을 심하게했다. 그 때의 사연만도 정말 한가득이라 책 한 권을 써낼 정도다. 하하.


어쨌든 이 곳에선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몰라도 삶이 즐거운 까닭은 배려심 많고 다정한 러시아 사람들 덕분이다. 물론 이게 러시아인 전체의 특성인지, 모스크바 사람들만 그런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곳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모두 나와 내 아이에겐 감동의 연속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영문명이 없어 어디로 가야하나 노선도를

살펴보고 있으면 누군가 와서 서툰 영어로 도움이 필요한지를 묻는다. 마트 셀프 계산대에서 와인 바코드를 찍었는데 신분증을 스캔해야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도 옆에서 계산하던 러시아 아저씨가 직원을 데려와 해결해주셨다. 무거운 물을 끙끙 거리며 들고 가는데 콘도 직원이 보자마자 뛰어나와 문을 열어주고 집 앞까지 같이 옮겨주기도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건 단순한 답답함만이 아니다. 때론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게한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짐작 할 수 없을 때도, 뭔가 불쾌한 욕을 늘어놓는 것 같을 때도…. 이 곳에서 가장 난감 할 때가 배달기사에게 전화가 오거나 얀덱스로 택시를 잡았는데 택시 기사가 뭔가 계속 물어볼 때다. 하지만 이토록 친절한 러시아 사람들은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에게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먼저 묻고 굳이 번역기까지 사용해기며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택시기사, 내가 러시아어를 못해서 전화통화가 어렵다고 번역기를 사용해 러시아어로 문자를 보내면 친절하게 답장을 보내주는 배달 기사들. 내가 러시아어를 못해 그들에게도 불편함을 주는 셈인데 늘 친절하게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배려를

해준다.


*** 편견 일 수는 있지만 스탄 쪽 사람들은 여유가 많지 않은 것 같다.


한 번은 아이와 길을 걷는데 반대 편에서 젊은 아가씨가 담배를 피우며 오고 있었다. 우리 아이를 보고는

얼른 담배를 반대 편 손으로 옮기고 옆으로 더 떨어져 지나가더라. 눈이 마주쳐 같이 싱긋 웃었다. 또 한 번은 고키리 공원에서 사람들이 버찌를 나무에서 따고 있었는데 나는 키가 작아 나뭇가지에 팔이 닿지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아이는 마냥 신나 땅에 떨어진 버찌를 줍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키 큰 러시아 할머니가 나뭇가지를 잡아

내려주시더니 우리 아이에게 와서 따보라고 배려를

해주셨다. 그 뿐인가,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늘 자리를 양보해준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도 마찬가지. 남편이 거주하는 콘도에서 아시안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엔 놀이터에서 행여나 인종차별을 하거나 해코지를 하는 로컬 아이가 있지 않을까 긴장했는데 (상하이 살 땐 주로 유럽 애들이 그런 짓을 했다 ^^) 우리 아이에게 다가와 서툰 영어로 말을걸며 귀엽다, 친구하자 먼저 말을 건내주는 러시아 아이들 덕분에 우리 아이 또한 너무 행복해했다. 휴대전화까지 들고와서 번역기로 소통을 하며 노는 모습에 정말 빵 터졌더라는!



그리고 또 한 번은 아이 생일 날 키즈카페를 갔는데 거기서 만난 러시아 꼬마 마샤도 그 날이 생일이라 엄마랑 키즈카페에 왔다고했다. 갑자기 같이 생일파티 하자며 우리 아이를 초대해 케이크와 풍선을 사준 마샤엄마! 나도 얼른 인형 하나를 사와 선물했더니 마샤도 마샤엄마도 너무 기뻐했다. 너무 특별하고 재미난 추억이다.


거리도 깨끗하고, 치안도 정말 안전하고, 공원도 많고, 아무대나 걸어도 그냥 다 멋진 이 도시. 이 곳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높은 까닭은 너무 멋진 이 도시 전체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이 아닐런지. 다들 마음의 여유가 넘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세상 어딜가도 이 도시처럼 멋진 곳이 있을까. 살인적인 물가와 총기사고가 나는 뉴욕, 집시에 난민에 더럽고 불친절하고 치안 나쁜 유럽까지. 세상의 모든 장점만 다 모아놓은 것 같은 모스크바. 이 곳에선 정말 오래오래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정부 리스크가 가장 크긴하지만… ^^;


이 도시에서의 나날들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따스하고 감사하고 설레이고 행복하고 아늑한 그런 꿈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