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려온 딸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던 나에게 고양이란
예쁘고 섹시하고 호기심은 생기지만 막상 키워보기엔 좀.
그런 나에게 남자는 뉴욕에서 I♥NY티셔츠를 사오랄 때 우유를 미끼로 이용했다.
미래의 남편- I♥NY 좀 사다주면 안되요?
나- 안되요. 무겁고 돈 없어요.
미래의 남편- 우유 보여줄게요.
나- 푸하, 그게 모에요
미래의 남편- 이럴 때 사료값 해야죠.
그때까지만해도 콧방귀를 꼈던게 사실이다.
우유와 처음 만난 날 고양이를 처음 안아봤을 때의 생경한 감촉이란
마치 소중하고 고귀한 무엇을 다루고 있는 어떤 기분이었다.
내가 꽉 쥐거나 함부로 다루면 망가질 것만 같은.
냄새를 킁킁 거리더니 우유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 얼굴을 계속 밟고 지나갔고
난 그 기괴한 소리의 정체가 갸릉거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나- 이게 무슨 소리지?
미래의 남편- 고양이들이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야. 우유는 뿅뿅이가 좋은가보다.
그렇게 나는 집사의 직분을 받아들였다.
무지한 집사의 방치 덕에 그루밍이 잘 안되던 우유의 턱 밑엔 진주알이 생기고 말았다.
점점 자라난 진주목걸이는 우유 앞발만해졌고 우유는 생애 첫 강제 미용을 당해햐 했다.
그 이후 털이 많이 자랐다싶으면 집에서 문구용 가위를 들고 서걱서걱 셀프 미용을 한다.
부둥거리는 우유를 안고 틈을 노려 턱 밑과 배, 발 털을 잘라주었다.
제법 깔끔해지고 돈도 번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나- 오빠! 우유 몬가 달라지지 않았어?
남편- 으아니 얘 오른쪽 수염이 어디갔어!!
낫으로 친 거 마냥 멋대가리 없이 잘려버린 오른쪽 수염에 우유는 우스꽝스러운 몰골이 되어버렸고
나는 남편이 말해주기 전까지 그 사실을 저언혀 눈치채지 못한 나의 관찰력에 스스로 의구심이 들 지경이었다.
한동안 우유는 뎅겅한 오른쪽 수염과 멀쩡하게 쭉 뻗은 왼쪽 수염의 불균형을 딛고 지내야 했다.
미안했다 엄마가.
내 이름은 우유.
4개월 전 한 돌을 갓넘긴 꽃띠 처녀다.
내 주요일과는 엄마 아빠에게 애교부리기, 밥먹기, 똥싸고 모래덮기, 그루밍, 뒹굴기 정도다.
나는 엄마, 아빠랑 같이 사는데 엄마가 동생이 곧 생길거라고 했다.
지금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는데 나날이 배가 커지는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아빠가 처음 엄마를 만났을 때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외롭고 화도 난 나머지 온몸에 피부병이 돋아 가려워 디질뻔했지만
지금은 엄마, 아빠랑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좋다.
오히려 대구고 부산이고 놀러갈 때마다 하도 데리고 가서 피곤할 지경이다.
안방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
엄마가 깼나보다.
침대로 가 엄마 옆에서 좀 문대야겠다.
내가 침대로 올라가면 엄마는 언제나 '우유왔냐'며 내 턱을 간지러준다.
기분이 좋아 갸릉거렸다.
엄마한테 궁디를 붙이고 자다 똥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는데
내 화장실은 좁아서 자꾸 조준에 실패한다.
화장실 밖엔 모래도 별로 없는데 박박 긁어모아도 똥내가 좀처럼 가시질 않아서 영 찝찝하다.
에잉 그루밍이나 해야지.
엄마가 밥을 먹는다.
한참을 지켜봤다.
저게 맛있을까?
나는 내가 먹는 캔이 훨씬 맛있는데..
엄마는 맛있게 잘도 먹는다.
띵동
앗 택배가 왔나보다.
엄마가 택배를 뜯고나면 박스랑 비닐은 항상 내차지인데 부스럭 거리면서 노는게 정말 재밌다.
엄마가 우리집 괴물, 청소기를 꺼낸다.
난 세상에서 저 놈이 제일 무섭다.
왱왱 나는 소리가 끔직히도 싫다.
엄마는 이상하게 나 있는데로만 꼭 청소기 머리를 들이민다.
세탁기 뒤로 가서 숨어야지.
드디어 청소가 끝나고 해가 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하는 거보니 곧 아빠가 퇴근할 시간인가보다.
설거지할 때보면 수도꼭지에서 물이 쏴아 나오는데 요즘은 이게 참 신기하다.
한참을 지켜봤다.
뾱뾱뾱뾱뵥
아빠다!
아빠가 밖에서 또 오만잡내를 묻히고 왔다.
아빠 종아리에 내 냄새를 묻히려고 열심히 문댔다.
아빠는 내가 애교부린다고 밥도 안먹고 좋아죽는다.
킁킁 이제 좀 우리 아빠같다.
아빠는 밥먹고나면 쇼파에 좀 드러누워있다 목욕을하는데
욕조에 물받을 때 수도꼭지에서 물나오는게 넘 신기해서 또 한참을 들여다봤다.
아빠가 욕조에 몸을 담그면 엄마도 같이 발을 담그고 둘이 도란도란 오늘 있었던 얘기를 나눈다.
나도 옆에 앉아 열심히 들었다.
아 밤이오면 이상하게 몸이 근질근질한게
우다다 뛰고싶다.
알짱알짱 거리는 모기 한 놈만 걸리면 다 죽었는데
오늘도 한번 씐나게 뛰어볼까.
잘 준비를 마친 아빠랑 매복놀이까지 신나게 한판 했더니 피곤하다.
엄마는 오늘도 노트북을 키고 앉은 걸보니 관찰 일기를 쓰나보다.
내 얘기도 좀 쓰나?
아웅 피곤해.
오늘도 신나게 놀았다.
엄마도 자려는 것 같은데 엄마아빠 사이에 낑겨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