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게 할 용기
어릴 적부터 우리는 '착한 어린이'여야 했다.
남에게 폐끼치지 말고 모나게 굴지 말고 '욕'먹을 짓 하지 말고 크도록 교육받았다.
욕먹지 않는 착한 어른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열다섯살의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베프에게 상처란 이유로 절교를 당해보았다.
열아홉살에서 스무살로 넘어갈 무렵의 우리는 누군가보다 수능을 잘본 것이 상대에 대한 상처의 이유였고 원서가 대박난 친구는 누군가에게 배아픔의 대상이었다.
갓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원래는 못생겼는데' 성형이 대박나서 킹카남친을 사귀어서 아니꼬왔고 그도 지나서 중반이 넘어가면 개뿔 스펙도 볼 거 없는데 취업이 잘된게 꼴보기 싫었다.
서른 즈음에는 좋은 남자 만나서 혹은 돈많은 시댁 만나서 애 쑴풍낳고 돈걱정없이 사는 친구가 아주 그냥 눈꼴 사나워서 못보겠다.
남 잘되는 꼴을 못보는 것. 어쩌면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걔네 집이 사실은 부모님이 쇼윈도 부부라더라, 성형으로 높인 코가 구축이 와서 재건성형을 급하게 알아보고 있다더라, 남친이 바람둥이라더라, 사실은 남편한테 맞고 산다더라하는 정도의 이야기라도 들어야 그나마 꼬인 배알이 조금은 풀려 본인의 시궁창 같은 (어쩌면 그다지 시궁창이 아니지만 본인이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 현실에 위안을 삼는다.
'착한'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착하다'고 하는가.
남에게 욕먹을 짓을 안하면 착한 것인가. 부탁을 거절을 못하면 착한 것인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착한 것인가.
사실 남에게 '착한' 인간으로 분류받기란 생각보다 참 간단한 것이다. 그저 밥을 한 번 더 사고 맞장구 쳐주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면 된다.
하지만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나 자신에게는 가장 '악한' 일이라고.
착하게 살아야할 필요가 있는가.
착하게 살아서 얻는게 무엇인가.
아직은 사회화가 조금은 덜 이루어진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보아도 그렇다. 인기가 많은 착한 아이들은 그냥 욕심이 별로 없고 잘 망가지고 잘 웃어주는 아이들이다.
자기꺼 똑부러지게 잘 챙기고 굳이 아량을 베풀 필요를 못느끼는 아이들은 인기가 없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나쁜가. 오히려 사회를 살아가는데 더 야무진 아이일수도 있다.
욕심이 많은 것이 나쁜가.
보통 우리는 '욕심'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쓰곤 한다. 하지만 내가 탐욕스럽게 남의 남자친구를 빼앗는 욕심이라던지 나는 안먹을 거라고 하나만 시키라고 해놓고 너의 접시의 음식을 절반 넘게 먹어버리는 욕심이 아니라면 너한테 끼친 피해가 있는가. 그냥 나의 삶을 더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서 부리는 욕심이라면 그 욕심을 욕할 수 있는가.
'상처'는 내가 주는 것인가 내가 받는 것인가.
솔직함을 가장한 막말로 일부러 남에게 상처를 주고 다니는 인간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미성숙한 인간이라면 의도치 않은 상처들을 주고 다닐 수 있다. 사실 상처를 받는 입장에서는 나는 세상이 무너질 거 같이 슬픈 순간에 해맑게 웃고 있는 길거리의 행인의 미소조차 상처이다. 어찌보면 내가 쟤한테 상처받았으니 저 새끼는 나쁜 새끼라는 낙인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엉뚱한 곳에 화살돌리는 격일 수도 있다.
'욕'먹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다면 무결점인간이 되어라.
학창시절부터 우리집은 똥꾸멍 찢어지게 가난했고 나는 너무너무 노력해서 그나마 괜찮은 대학에 진학해서 노력노력해서 입사해서 그럭저럭 월급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사치는 꿈도 못꾸고 학자금 갚아가며 고생고생하며 그래도 몇년 후에는 해외여행을 가보려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데 갑자기 사촌의 대학 등록금까지 대신 내줘야하고 거기에다가 집안의 누군가가 사채를 끌어다써서 그 빚도 내가 갚아줘야하고 등등등의 기구한 사연이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그 상황에서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참고 참고 또 참으면서 사는 삶이라면 아마 욕을 먹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는 나는 사실 밥을 사고 싶지 않은데도 사고 나는 너무 피곤해 죽겠는데도 남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다 들어주고 하나 남은 마카롱을 내가 먹고 싶지만 남에게 양보하는 천사라면 욕을 안먹을 것이다.
이런 사람도 의뭉스럽다고 욕할 사람은 할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할 것이 99번 잘하다가도 1번 잘못하면 사람들은 너를 욕할 것이다.
물론 그 때 욕할 사람들은 원래도 언제든 너를 욕할려고 준비중인 사람들일 것이다.
욕을 먹지 않기란 이토록 고단하고, 상처를 입기란 너무도 쉽다.
'욕'먹고 견딜 자신이 있는가
미워하게할 용기도 용기라면 용기다.
우리는 사실 욕먹고는 못견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 내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욕을 먹나 싶어서 나를 욕한 그 인간과 대면해서 그 속내까지 다 듣고 일일히 해명을 해서 내가 욕을 먹을 만한 인간이 아니었다고 오해를 풀고 싶어한다. 내가 욕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누군가는 나를 욕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상당한 정제과정이 필요하다. 타고나길 무던한 성격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냥 나를 미워하게 내비둘 수 있는 것 자체가 용기다. 내가 세상 모든 인간을 만족시키고 살 수도 없는거고 10년 전의 나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아직도 나를 욕하고 있는 인간이라면 10년의 세월 동안 내가 무얼 겪었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짐작이라도 해볼 성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래 나를 싫어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별일 없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