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늘의 해는 뜬다.
뿅갹이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퇴원하던 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 긴장해있었다. 남편은 전날 단단히 장착 시킨 신생아용 카시트에 뿅갹이를 앉히고 조심스레 시동을 걸었다.
신생아실에서 남처럼 잠깐씩만 뿅갹이의 얼굴을 볼 수 밖에 없었던 남편에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뿅갹이의 안전이 모두 달려 있는 것이다.
“뿅..뿅갹이 뒤에 타고 있어..?”
남편의 떨림이 뒷자석까지 전해왔다.
“뿅갹이 뒤에 태우고 운전하려니까 어무청 떨리지?”
“으.. 본네트에 계란 올리고 운전하는 기분이야.”
남편은 올림픽대로에서 마주하는 비매너 운전자를 향해 낮게 읇조렸다.
“81oo 너 지금 내가 뿅갹이만 안태웠어도 넌.. 아오. 나중에 뿅갹이 없을 때 거리에서 다시 한 번 만나자. 내가 너 외웠어. 81oo..”
그렇게 엉금엉금 친정집에 도착했다.
산후조리원을 안 가기로 한 나는 사촌언니-무통주사의 진리를 설파하셨던 바로 그 선각자 님-의 강력한 조언으로 집으로 오시는 산후도우미를 신청했는데 그냥 친정엄마랑 둘이 어떻게 한 번 해보겠다던 용감했던 때와 달리 막상 예약하고 보니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안정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분은 오늘이 아닌 내일부터 오신다.
이제 겨우 태어난지 5박6일 된 핏덩이와 나.
덩그러니 남겨져 이 밤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아니 것보다도 내가 이 아이를 죽이지 않고 내일 아침 조리사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
최고로 긴장했던 그 밤은 1분 1분 피곤하게 매우 천천히 지나갔다.
몇 번인가 선잠을 자고 깨기를 반복하고 우는 아이를 안고 되는대로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렸다.
아이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숨소리를 확인하기를 수십번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먼동이 트고 서서히 아침이 밝아왔다.
세상을 볼 수 있는 3일이 주어진다면 밤이 낮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겠다던 헬렌켈러의 말을 읊조리던 비록 다리는 짧지만 목소리 하나는 월드베스트인 이빨부자 이병헌이 말하던 그 기적을 나는 보았다.
아침이 오고 그녀가 첫 출근을 했을 때 나의 첫 인사는 ‘안녕하세요?’도 대기실에서 지겹도록 듣던 ‘아파요?’도 아닌 깨달음 담긴 그 것이었다.
“그래도 오늘의 해는 뜨는군요.”
조리사님을 처음 마주한 내 입꼬리가 가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