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 그 잔혹한 과정
모유수유를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모유수유는 산모에게 강요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
이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국제모유수유전문가께서는 내 가슴을 쭈물쭈물 주무르며 한마디 남기셨다.
“조건 좋네.”
연륜이 깊은 그녀의 한마디를 그 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사이즈와 모양 모두 이상적이라고 예찬하던 신생아실 직원들의 말이 스친다.
젖도 잘 돌고 유축도 촤압촤압 잘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픔이 왜 없으랴.
뿅갹이는 아직도 젖을 한번에 깊게 촥 물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한참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애처롭게 방황한다.
젖꼭지만 얕게 물고 빨 때는 이러다가 내 젖꼭지가 떨어져 나가지 싶어 내 자식이고 뭐고 앉혀놓고 한마디 하고 싶다.
내 젖꼭지랑 뿅갹이 입이 잘 붙어있나 확인하느라 내내 내려다보고 있자면 재작년에 박아 넣은 인공디스크가 뒤로 튀어나와 경추 추간판을 탈출할 것만 같다.
처음에는 유축기 사용법을 잘 몰라 무조건 직수만 했는데 유축기 사용법을 알게 된 이후로 드디어 내 젖꼭지의 생존권을 존중해줄 수 있게 되었다. 문명의 이기란 놀라운 것이다.
아무리 병원에서부터 모유수유 전문가에게 쭈물거림을 당했기로소니 내 젖꼭지는 아직 부끄러움을 타는 보호받아야 할 여린 존재인 것이다.
유축기를 처음 사용했을 때 젖소가 된 것 같은 비인간적인 느낌적인 느낌에 알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젖꼭지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다니 나는 기꺼이 한 마리의 젖소가 되길 택했다.
오늘도 4시간 간격으로 열심히 짰다. 사실 짜내지 않으면 뭉치고 아프고 열나서 견딜 수가 없다.
수미쌍관을 이루어 강조하자면 모유는 분유보다 좋고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퐥.트.다.
하지만 산모에게 모유수유를 강요할 수는 없다.
유방의 모양과 조건이 모두 다른 것이라 그 편함과 불편함의 정도, 아픔의 정도도 모두가 다른 것을 누구에게나 무턱대고 모유수유가 좋으니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엄마는 나아쁜 엄마라고 비난 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모유를 먹이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심상치않은 느낌이었다.
꽉 막혀 저 깊은 곳에서 욱신거리는 느낌은 산통보다 심하다는 젖몸살의 전조였다.
손으로 연신 가슴을 주물러보아도 도무지 풀릴 기미가 없었다.
단단히 뭉쳐진 응어리가 더 얼얼할 뿐이었다.
그동안 젖꼭지가 아파 유축을 애용한 탓이었다.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가슴을 쥐어짜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이것은 우리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재빨리 근처 아이통곡에 연락했다.
아이통곡..
모유수유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다루어주는 곳으로 오케타니, 아이통곡, 기통맘 등의 여러 업체가 있다. 수유자세교정에서 유선염 해결까지. 엄마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곳이다.
전화로 현재 사정을 설명하고 예약시간을 잡고 나니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까지고 또 까져 쓰라린 젖꼭지와 젖양이 불어만가는 거대한 가슴을 안고
하루하루 너무 고통스럽게 견뎌왔다.
그게 벌써 77일째다.
마음이 커다란 북 한가운데에 부딪혔다.
같은 마음이었을까.
남편이 먼저 입을 떼었다.
“지금 뿅뿅이가 받는 스트레스의 90%는 젖 먹이는 문제야. 그렇지?”
조심스레 분유로 돌리는 것이 어떨지 제안해왔다.
막힌 유선이 욱신거려왔다.
“여보, 나 그동안 ‘도저히 못하겠다는 순간까지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지냈는데 이제 지쳤나봐.”
이제 더 이상 가슴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니 마음이 더없이 홀가분했다.
77일.. 많이 버텨냈다.
두돌까지 먹이라고 권장한다지만 지금 나에게 두돌이란 오지 않을 시간이다.
응급실을 찾는 마음으로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찾은 그 곳은 아기 침대와 바운서, 나무 침대와 쇼파가 놓인 깔끔한 곳이었다.
그 곳에 나를 구원해줄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참을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던 그녀는 말했다
“지금 막혔던 유선에서만 젖을 빼내고 있어요. 느낌이 차갑죠?”
오오 그게 정녕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양손에 얼굴에 때때로 튀는 젖을 흰 수건으로 닦아가며 열심히 젖을 빼내던 그녀의 등 언저리께로 분명 날개를 보았다.
“자 이제 막혔던 곳 한번 만져보시겠어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찔러보자 그렇게 단단하게 뭉쳤던 가슴의 멍울이 물컹하고 들어갔다.
계속된 마사지에 머릿속 뉴런 하나하나가 쫙 펴졌다 오그라드는 듯했지만
바로 수유자세 교정에 들어가 눈에 힘을 줘가며 열심히 뿅갹이의 입에 젖꼭지를 들이밀었다.
젖양을 줄이려면 짜지말고 무조건 직수만 하고 버티라는데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과 함께 똑부러지는 관리사님(이라 쓰고 ‘신의 손’이라 읽는다.)의 설명과 응원에 왠지모를 힘이 났다.
뿅갹이를 안고 남편과 함께 아이통곡의 문을 나섰다.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이 곳으로 날 데려와준 남편에게 미소지었다.
“여보, 7만원이라고하길래 나는 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70만원이 아깝지 않은 가격이네.”
휴, 젖 튀기는 하루였다.
나의 모유수유일기는 아이통곡을 찾기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과감히 유축을 버리고 직수만 시작한 것이 뿅갹이의 탄생 77일 째였는데 어느새 124일이 되었다.
그동안 몇번인가 젖양을 줄이기 위한 관리를 받았고 몇번인가 유선이 막혀 더 아이통곡을 찾았다.
분유먹이는 비용을 호가할만큼 아이통곡에 투자했지만 무사히 직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다.
거대한 대추토마토 같던 두 가슴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벌써 2년 전의 기록이다.
아이통곡 모유관리사의 힘으로 나는 믿을 수 없는 13개월 완모직수를 해내었고
죽음의 단유과정을 지나왔다.
주변에서 모유수유하면 다들 나를 떠올리고 수유 중에 어려움이 오면 나에게 연락을 해올 만큼 나는 야매전문가가 되었고 그만큼 혹독한 과정을 정면으로 겪어내었다.
모유수유는 분명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겠지만 이왕이면 왜 그걸 좀 쉽게 할 수 없게 만들었는지 신을 원망한 적도 여러번이다.
애를 안고 젖을 그냥 탁 물리기만 하면 상황 끝나는 것처럼 묘사하는 매체들을 보면서 분노한 적도 많다.
늬들이 젖몸살의 고통을 알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 모유수유가 경제적이라고?
내가 아이통곡에 갖다바친 돈이 수백이다. 모유수유 권장할거면 가슴마사지 비용부터 보험대상에 적용해라.
라고 생각했었다.
지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미화되고 벌거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엄청나게 고통스러웠고 감히 말하건데 내가 육체적으로 겪어본 일 중 가장 힘들었다.
가슴에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었달까.
그도그럴 것이 나는 단유를 앞둔 2주 전까지도 젖몸살로 아이통곡 문을 두드렸었으니 말이다.
내가 유독 더 고생을 한 경우기는 하지만 이 시간에도 모유수유를 위해 가슴을 끌어안고 있을 세상 모든 엄마들을 위해 여기 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새벽별이 밝고 애들은 젖달라고 보채는 밤,
엄마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