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관찰일기

그 해 크리스마스의 추억

나는 왜 이 남자랑 결혼하기로 했나

by 심효진

꺼슬한 눈송이가 바람을 타고 핑그르르 창 밖을 맴돈다.
온통 하얗게 뒤덮인 건너편 집들이 만들어내는 정경이 낯설다기보다는 왠지 정겹다.
작년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뿅뿅아, 크리스마스에 뭐하고 싶어?”
“뿅뿅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뭐 받고 싶은 거 없어?”
크리스마스를 3주 앞뒀던 그 때, 남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질문을 하곤 했었다.

“음, 글쎄.”

어린아이처럼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그의 분주함이 내심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크리스마스 따위 일년 중 하루일 뿐
밖에 나가면 사람에 치이기나 하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뿅뿅아, 얼른 예약해야돼. 크리스마스는 워낙 수요가 많아서. 지금도 늦었어.”
“뿅뿅아, 선물은 뭐 받고 싶은지 좀 생각해봤어?”

여간 성화가 아닌 남자의 행동에 나도 덩달아 크리스마스를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응, 난 그럼 목걸이..?”

작지만 내 목에 항상 걸 수 있는 여성스런 무언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제격이란 생각에 남자에게 목걸이를 받고 싶다 했다.
남자에게는 첫만남 때부터 유독 눈에 밟혔던 낡은 카드지갑을 대신할 새 지갑을 선물하기로 했다.
이제 선물은 해결됐고.

“뿅뿅아, 뿅뿅아, 우리 크리스마스에는 뭐하지?”

마치 2011년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남자는 마치 그 날만 보고 사는 사람처럼,
2012년 따위 오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나를 재촉했다.

“뿅뿅아, 뿅뿅이가 특별히 가고 싶어하는 데가 없는 것 같아서 내 나름대로 정해봤는데, 어때?”

남자는 부지런히 메신저로 자신이 추천하는 곳의 정보를 띄웠다.
업무 중에 틈틈히 확인하면서 나 역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가 슬몃 기대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그린테이블에 가고 당일에 좀 늦잠 잔 다음에 W어웨이스파가서 마사지 받고 저녁때는 파크뷰에 가서 부페로 마무리. 뿅뿅이가 항상 어깨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 이렇게 짜봤는데 어때? 어때?”

아, 이 남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저녁에 만나면 숙제 잘해 온 날 맨 앞자리에서 앉아서 숙제한 티를 엄청 내는 초딩 마냥 신난 이 남자의 궁디를 열심히 토닥여 줘야지..

“응, 좋아”
“나 그럼 예약한다아.”

그렇게 남자의 20111224프로젝트 코드네임:크리스마스 더 라스트 미션은 확정되었다.

“저..근데 이브에 저녁먹기 전에 교회 잠깐 같이 들려도 될까? 내가 교사하는 어린이부 아이들 공연이 있어서. 부담스러우면 안가도 돼.”

어렵사리 말을 꺼내는 남자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이렇게까지 정성스레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드디어 대망의 크리스마스 이브.

남자는 이미 전주부터 크리스마스에는 뭐 입을지 호들갑을 떨어놨기에 어렵지 않게 골라놓은 옷을 입고 잔뜩 고데기를 말고 정성스레 화장을 하고 함께 나섰다.

남자의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실 일이 있어 잠시 만나 콧구멍으로 알밥을 넣고-남편 관찰 일기 10편 참조-이내 교회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남자의 교회는 클래식한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고풍스러운 교회였다.
후에 우리는 이 공간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지하 본당에 들어서자 캐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 애들 준비하는 것 좀 가서 보고 올게.”

정면의 십자가와 크리스마스에 한껏 흥이 오른 사람들의 표정.
이런 따듯한 분위기가 오랜만인 것 같이 느껴졌다.
새삼 회사에서 치이고 짓눌렸던, 사막 같아졌던 나의 마음이 조금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가 어린아이들을 따뜻한 눈길로 어루만지고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조무래기손에 들린 리코더, 트라이앵글 따위를 내밀며 남자를 향해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사랑이 많은 남자구나.'





마음 한구석이 몰캉거렸다.
후에 돌이켜보면 이 순간이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이 남자는 나와 연애하고 있지 않았더라도 크리스마스에 이 공간에서 아이들의 공연을 보고 있었겠지.'



그동안 남자가 결혼하자는 말을 꺼낼 때마다 콧방귀를 꼈었는데 이제는 나도 조금은 진지해져도 될 순간이었다.

그 날 저녁 나는 최고의 채끝안심스테이크를 맛보았고 남자와 결혼하기로 마음 먹었다.





벌써 3년이 넘게 지난 이야기다.

이 때 이야기를 꺼내면 다 자신의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으며 나를 꼬시는 건 일도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