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관찰일기

그 남자의 속사정

사랑은 꽃다발을 타고

by 심효진

연애기간이 길지 않은 상대와 결혼을 결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 최대의 도박일지 모른다.
나 역시 결혼 준비과정에서 이 남자에게 내가 모르는 반전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촉을 곤두세웠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날은 자고 있는 남자의 핸드폰을 보았다.
구매하는 순간부터 모든 기록을 지우지 않은 둣 했다. 오 이거슨 파보지 않은 광산.

친구들과의 단체톡부터 스팸문자까지 빠짐없이 체크해 내려가다
남자가 나와 소개팅을 했던 시기에 소개팅을 몇 건 더 했음을 알게되었다.
거기까지만 알게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더 마음에 들어했던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다.

남자- 형, 나 갹갹이가 마음에 들어요. 느낌이 와. 내 여자같아. 잘 되게 좀 도와줘요.

마음이 오목해졌다.
부등호의 날카로운 면이 가슴팍 한가운데를 아프게 후비고 들었다.

정황상 남자와 달리 그 여자는 별다른 느낌이 안왔었는지 연락이 잘 되지 않았고 흐지부지 끝난 듯 했다.
나는 남이 별 생각없이 흘려버릴 정도의 남자를 만나 지금 결혼하겠다고 하는건가.
귓 속을 타고 고막언저리가 먹먹해져왔다.





날이 밝아왔고 남자는 출근했고 나는 홀로 길을 걸었다.


남자에게 몇번인가 전화가 왔지만 별로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에 멍하니 신호를 기다리다

'그러고보니 제대로 된 꽃 한 번 받아본 적 없구나'

생각이 드는데 사귀기 시작한 주말에 남자가 내 방에 놓으면 좋을 것 같다며 선물한 로즈마리와 분홍 꽃 화분이 떠올랐다.
'마리'와 '크'라고 이름지은 두 화분은 뚱땡이 바나나우유 모양 화분에 담겨 사이좋게 내 방 창가에 놓여있었다.

'꽃화분말고 꽃다발! 로맨틱함이 부족하다고'

왠지 나는 남자가 별다른 노력하지 않아도 술술 굴러들어온
옆구리 찌르니까 팔짝 뛰는 결혼하기 쉬운 여자가 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은 코엑스 메가박스로 향했다.
아무거나 제일 빠른 영화를 끊었는데 마침 '화차'였다.

약혼녀가 결혼을 한 달 남기고 퍼붓는 빗속으로 도망가버리다니
나도 저러면 남자가 날 애타게 찾아주기나 할까.
오늘하루만큼은 지문도 안남긴 채 사라지고 싶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더 걸어다니다
남자의 퇴근 시간이 한참지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저멀리 2층 불꺼진 내 자취방이 보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뭘 기대한거야'

그럴리가 없는데도 불이 환하게 켜있고 그 안에는 안절부절 못하고 노심초사하며 나만 기다린 황망한 표정의 남자가 앉아있길 바랐나보다.

불도 켜지 않고 찬바닥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똑똑똑

"누구세요?"

남자였다.

왜 불도 안키고 어두운데 앉아있냐며 남자가 들어왔다.
오늘 급작스럽게 업무가 생겨 야근을 했다 말했다.

"여기..이것 좀 봐줄래?"

남자가 노란 종이가방을 쑥 밀었다.
말없이 들여다본 종이가방 안에는 거짓말처럼 꽃다발이 들어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옅은 색감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섞여있는 꽃다발이었다.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뿅뿅이 뿐이야. 이제 나에게 뿅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걸. 내가 더 잘할게. 미안해."

뻔하디 뻔한 아침드라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이 왈칵 났다 촌스럽게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하루종일 마음이 너무 아팠어."

힘껏 안아본 남자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매거진의 이전글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