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취식

by 심효진

그 날은 왠지 좀 기운이 났다.
날도 선선하니 좋고 뿅갹이를 데리고 가까운 곳에라도 나가볼까 싶었다.
무거운 유모차를 트렁크에 구겨 넣고 뿅갹이가 차 뒷자리에서 울고 등의 중간과정은 생략하고
용산 아이파크몰에 무사히 도착했다.
운전ㄱㅈ인 내가 무려 아이를 싣고 무사히 주차장에 주차까지 하고 쇼핑을 나오다니 감격스러움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 뿅갹이와 함께라면 난 어디든 갈 수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저 애 데리고 운전해서 여기 왔어요~.’ 외치고 싶었다.

어디를 가볼까

랄랄라

우선 배고프니까 밥을 좀 먹어볼까.

이상하게도 최근 몇 년 가본 적 없던 티지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오호, 패밀리 레스토랑. 그래, 우리는 패밀리니까. 우리는 패밀리 패밀리 패밀리 –‘

베이비체어에 뿅갹이를 앉히고 런치메뉴를 시켜먹으며 둘이 셀카 찍고 난리가 났다.
직원들이 뿅갹이가 귀엽다며 가끔 미소를 보낸다.
당당하게 수유실에 들어가 기저귀도 좀 갈고 수유도 좀 하고 페밀리 레스토랑을 패밀리답게 이용하며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제 배도 슬슬 부르고 모던하우스도 좀 가보고 자라에 가을 신상도 좀 구경가볼까.

했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방 안을 쳐다봤는데.

그랬는데

.
.
.
.
.
없다.




지갑이
.
.
.
.
뭐가?

그러니까




지갑이


지..응?





지갑이


지갑이 없다.


잘못 본 줄 알았다.
근데 제대로 본거다.

어제 관리비 이체한다고 촐싹대다 서랍 안에 넣어놓고 고이 넣어놓고 왔다.
아무리 애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도 안 챙길게 따로 있지 지갑을..
다급하게 남편에게 전화했다.
근데 전화하면 뭘하나 남편은 일하는 중인 것을.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근처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를 불러내야하나.
에이티엠기에 가서 무카드무통장 출금이란걸 해볼까.
이체할래도 보안카드가 지갑에 있지.
이럴 땐 가방 한쪽에 굴러다니는 지폐라도 없더라.

눈 앞에 다 비운 파스타 접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은 뿅갹이가 귀엽다며 계속 미소를 보내며 서있다.

뿅갹아, 엄마 어떡하지..?

-

근처 회사 친구를 불러내는 건 도무지 예의가 아니고
무카드무통장 출금은 영업점에서 등록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거였다.
할 수 없이 다시 남편에게 전화했다.

“으이그 털팔아. 계좌번호 있나 물어봐봐.”

감사하게도 티지아이에 계좌이체가 되더라.
나의 주차비를 걱정했는지 다른 테이블이 두고 간 8만원어치 영수증도 친절히 챙겨주셨다.

“아이 데리고 다니려면 원래 정신이 없죠. 기억하고 있을게요. 다음에 남편분이랑도 꼭 같이 들려주세요.”

웃으며 배웅까지 해주는 매니저였다.


그 날 참 감사했어요.

난 티지아이에 계좌이체로 계산한 여자가 되었다.

아 그리고 여담인데 돈이 정말 한푼도 없으니까 아무리 싸고 좋은 물건을 보아도 내 것이 될 수 없으며 목이 말라도 침만 삼킬뿐 까페에 여유롭게 앉아 커피 한 잔 들이키며 수다 떠는 사람들이 그렇게 반짝거려 보입디다.

-

집에 종종 놀러오는 후배가 뿅각이랑 놀아주고 나는 이 기회에 등 좀 펴고 있었다.
나보다 4살이나 어린 후배는 몇 년 후 결혼과 육아에 궁금한게 많은지 이것저것 많이 물어본다.

나- 그러니까 갹갹아. 육아는 육체는 힘들고 정신은 공허해.
후배- 언니, 난 언니가 육체는 힘들지만 정신은 행복하다고 할 줄 알았어.

뿅갹이에게 온 얼굴고 웃음지으며 상냥하게 말하는 나를 보고 후배가 감탄했다.

후배- 우와 언니 애기 진짜 잘 다룬다. 유치원 선생님해도 되겠는데?
나- 내새끼니까 하는거야.

뿅갹이에게 보여주는 자애로운 미소말고 완전 단호박 선배의 얼굴로 대답해줬다.
아, '죽지못해' 라는 말을 빼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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