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관찰일기

청소요정의 방문

by 심효진



지금 내가 쇼파에 앉아 노려보고 있는 저것은
스팀청소기가 아니라 차라리 시커멓게 자리잡은 감정의 응어리다.
도대체 왜 저 물체가 거실 한쪽에 사흘째 방치되어있어야 하는지 화가 난다.

사흘전, 빨래와 설거지 그리고 진공청소기 돌리기를 마치고 힘들어 하는 내게-당시 임신 8개월-남편은 분명 퇴근 후 스팀청소기는 자신이 돌리겠다 호언장담했다.
헌데 스팀청소기를 주섬주섬 꺼내는 순간 남편의 목욕물이 다 받아졌길래 나중에 하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상태로 청소기는 그 자리에 놓였고 그날도 그 다음날도 저녁먹고 여지없이 쓰러진 남편은 청소기 손잡이도 잡아보지 않은 채 오늘 낮이 되었다.

저게 뭐라고..

내가 그냥 후딱 돌릴까 하다가도 만삭에 몸이 무거워 죽겠는데 고작 스팀청소기 하나 제대로 돌려주지 않는 남편이 얄미워 저것만은 손대고 싶지 않다.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줄 아량 따위 있을 리 없는 나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원래 남들도 그만큼 피곤해 하는거야? 아님 당신이 유독 체력이 약한거야?
남편- 회사에서 계속 막내생활을 하다 보니까 너무 피곤해. 미안해
나- 마음 아프고 짠하기도 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매일매일매일 피곤하기만 할까 싶어. 나름 막달인데 저렇게 피곤해서 집안일도 못 도와주는데 애기 낳으면 육아 도와주는 건 아예 기대도 못하는 거 아닐까 싶고..
남편- 어쩐지 졸면서도 불안하드라..



대화는 점점 격해져만 갔다.



남편- 진짜 서럽다. 퇴근하고 피곤해서 졸은 것도 가슴 졸이면서 미안해 해야되나
나- 피곤해하는게 하루이틀 이어야지
남편- 나도 더 이상 죄인 취급받곤 못살겠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나- 그럼 어떡할건데
남편- 나도 이러고 더 이상 못살아.

뭐..?
마음이 저만치나 내려 앉았다.

숱한 싸움에도 쉽게 헤어지자는 뉘앙스를 풍긴 적이 없었던 남편이었다.
헌데 지금 가사분담이라는 사소하지만 고질적인 문제로 남편 입에서 처음으로 저런 표현이 나왔다.
그가 뒤이어서 하려는 말이 내 마음에 결정적인 상채기를 남기게 될까 두려웠다.
싸우는 동안 메시지 알림이 쉴새 없이 울려대던 방안에
얼마 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띠로롱


남편은 무슨 말을 보냈을까..
이런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싶진 않았는데.

남편- 3시까지 청소도우미 아주머니 불렀어.
나- 뭐?
남편- 그 때까지 가실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나- 오시지 말라고 해. 돈 아까워. 그만큼 집안일 안쌓였어.
남편- 이미 불렀어, 부를거야.

이혼 통보라도 받나 쫄았던 마음을 가다듬고
식탁에 앉아 아주머니께서 오시면 하실 일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타의였지만 남편의 홧김에 찾아온 황금같은 기회를 알차게 사용하고 싶었다.
배가 나와서 하기 힘들었던 것부터 화장실 청소, 이불빨래 등등 차분히 적었다.


띵동

오후 3시 요정이 우리집을 찾아왔다.
아주머님은 화장실, 이불은 물론 싱크대, 결혼하고 한번도 닦지 못한 샹들리에 위까지 집안 곳곳에 부지런히 4시간 동안의 마법을 부리고 유유히 떠나셨다.
매주 화, 금요일 오후 스케줄은 비어있다는 거부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기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요정님은 갔습니다.
프로의 손길로 화장실 타일과 세면대 및 욕조를 눈부시게 바꿔놓고 갔습니다.
늘 물기 얼룩이 찝찝했던 싱크대와 주방타일은 마알간 낯빛을 되찾았습니다.
올려다보면 언젠간 닦아야지 한숨만 짓게 했던 샹들리에 위의 먼지도 이제는 없습니다.
날카로운 첫만남의 추억은 나를 1년 회원가입의 유혹의 덫에 빠뜨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손빨래에 감동하고, 꽃다운 님의 손걸레질에 눈멀었습니다.
가사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만남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초보주부는 새로운 경이로움이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집안일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엉덩이를 옮겨서 새로 마른 빨래를 개었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요정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맨발바닥에 느껴지는 마룻바닥의 뽀득한 감촉은 님의 여운이 휩싸고 돕니다.




남편에게도 이 감동을 전하고자 화장실 한 번 둘러보라고 했더니

“뭐 내가 한 거랑 비슷하네”

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에 매섭게 스매싱을 선사하며 한마디 남겼다.

“으이그, 결국 돈으로 해결하다니!”

그렇게 우리의 사이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

됐고,

청소요정이 떠난 집은 마치 영원할 것처럼 영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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