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집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는 초등 2학년과 7살 남매를 둔 가족이었다.
같은 아이있는 집들끼리 이해해주면서 살 수 있을 거란 건 동화 속 환상에 불과했던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폰이 울려댔다.
인터폰이 오는 시간대는 대중이 없었다.
한낮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을 재운 오밤중에도 인터폰은 왔다.
비어있는 우리집에 동물을 보러 온 이웃집 아이가 혼자 있을 때도 인터폰이 왔었다고 했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려 내려갔다가 나를 알아본 밑에 집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집에 트램펄린 있어요?"
"네, 폴더매트 두 장 겹쳐 깔고 그 위에 올려놨는데요."
"씨끄러워요."
"그럼 매트를 더 두껍게 깔게요."
"아니, 그냥 트램펄린을 쓰지 마세요."
집에서도 살얼음판 걷듯 깨끔발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이 안쓰러워서 얼마 전 들인 트램펄린이었다.
협상의 의지가 전혀 없는 아랫집의 단호함에 더이상 할 말을 잃고 집으로 올라왔다.
어떤 날은 아이를 재우고도 연락이 왔다.
"저희 애들 밤늦게 뛸까봐 밖에서 내내 놀리다가 집에 오자마자 씻겨서 8시면 재워요."
"저희 애들은 7시 반에 자요, 그니까 조용히 하세요."
무슨 말을 해도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또 어떤 날은 평일중에 껴있는 공휴일 낮 2시경이었다.
띠리리리 리리리 리리 리-
그 날도 어김없이 인터폰이 울렸고 도저히 못참겠는 나머지 받아쳤다.
"지금 집에 애들도 없는 대체 왜 인터폰 하신거에요?"
"방금 청소 했어요, 안했어요?!"
평일 낮에 청소했다고도 뭐라하는 당당함에 어이가 없었다.
그 들의 상식과 나의 상식에는 대체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는 걸까.
그런 일들이 되풀이 되자 인터폰만 울리려고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하루종일 가시밭에 서있는 것마냥 내 집이 너무도 불편했다.
빌런은 단지 한 집이 아니었다.
뿅갹이와 집을 나서려고 현관문을 열고 섰을 때 마음이 급한 뿅갹이가 혼자 계단을 두세층 내렸갔을 때였다.
갑자기 아이가 사색이 되어 올라오더니 처음 보는 여자가 씩씩거리며 거친 발걸음으로 그 위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생전 처음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들은 말치곤 굉장히 언짢았다.
"왜 그러시죠? 저희 애가 혹시 뭘 잘못했나요?"
순간적으로 뿅갹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 싶어 일단 공손하게 되물었다.
"아까부터 정말 씨끄러워죽겠네. 지금 윗집도 물어보니까 아니래고 그 집 애가 계단으로 쿠당탕탕 내려오는 거 보니 그 집 때문이네요."
지금 경비실에도 연락해 경비원도 두 명이나 불렀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중이랬다. 어림잡아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처음 이 집에 이사 들어올 때 아랫집 사람이 자기 아랫집에도 예민한 수험생이 있어 고생한다더니 바로 그 수험생이 커서 이제 대학생이 된 모양이었다. 분명 뛴 적도 없는데 다짜고짜 큰 소리로 무례하게 구는게 어이가 없어서 나도 맞받아쳐 큰 소리를 냈다.
"아니, 씨끄러운게 윗집도 아니고 한 집 건너뛰어 우리집인지 어떻게 확십합니까? 언제부터 씨끄러웠는데요?"
"한 30분 전부터요.드릴을 쓰질 않나."
우리집은 드릴을 쓴 적이 없다.
"드.릴.쓴.적.없.습.니.다"
그 후에 갑자기 기세가 약간 꺾이긴 했지만 한참을 서로 언성을 높이며 복도에서 싸웠다. 나에게 복도에서 소리를 지른다며 예의가 없고 몰상식하다며 몰아세우는 4층 대학생에게 보자마자 대뜸 뭐하는 짓이냐고 말을 하는 당신은 대체 얼마나 예의가 있고 상식적이냐며 거세게 맞받아쳤다. 그렇게 조용히 살고 싶으면 탑층으로 이사가거나 어디 산골에 단독주택 짓고 살라는 클리셰한 멘트들도 여럿 덧붙였다.
한참을 뿅갹이가 보는 앞에서 실갱이가 오갔고 올라오신 경비원 분들조차 저 분이 많이 예민한 거 같다며 나를 다독였다. 아랫집 하나 상대하기도 충분히 괴로운데, 빌런이 하나 더 나타나다니 눈 앞이 캄캄했다.
그 날 이후로 엘리베이터를 타면 5층이나 4층에서 멈출까봐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우리집은 6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나왔다가도 아랫층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나면 차라리 엘리베이터를 한차례 보낸 뒤에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이다보니 오며가며 엘리베이터에서, 놀이터에서, 장터에서 마주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면 의식적으로 나를 모른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인터폰은 매일 울렸다. 나와 상종할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지만 그냥 무시하라고 할 뿐 집에 애들과 오래 있는 내가 느끼는 괴로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듯 했다. 이럴 때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데 그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마음을 풀 곳이 없었다.
당시 층간소음 외에도 여러가지 상황들로 인해 내 정신건강은 좀먹기 시작했고 심장이 움켜쥐는듯 윽죄고 숨이 잘 안쉬어지는 상황이 몇 번인가 찾아왔다. 숨을 거칠게 몰아 쉬어봐도 시원하지 않았고 결국 그 피해는 내 옆에 항상 붙어있는 아이들이 고스란히 받았다. 결국 지나가다 보인 정신과에 제발로 걸어가 상담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괴로움을 호소하자 어느 날은 남편이 밑에 집에 내려갔다.
"아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괴로워해서요. 가능하면 인터폰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직접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그 이야기를 남긴 바로 그 주말 아침, 남편에게 아랫집 남자가 전화를 걸었다.
"애들 관리 안하시죠?"
아랫집 남자의 첫마디에 남편은 다시 나의 베프가 되었다.
돌아왔네,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