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시작
남편과 나는 세번 만났다.
두번째 만남 이후로 남편은 나를 피하는 듯 했다.
카톡은 계속 주고 받았지만 딱히 통화를 한 기억은 없다.
만나자더니 야근을 한댄다.
주말엔 꼭 만나자더니 연락이 없다.
불변의 진리, '쉬펄~아님말고'를 실행할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할 수는 없는 법.
주말이 다 지나갈 무렵의 저녁시간, 카톡이 왔다.
미래의 남편- 미안해요. 잠이 들었어요.
나- 아, 네
미래의 남편- 아, 땀 흘리며 잤네
어쩌라고.
나는 먼저 연락을 안키로 했다.
그 무렵 뉴욕 여행 생각에 온 신경이 집중했던 터라 남자문제에 감정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아는 오빠동생 사이 정도는 기대했는데 적극적이지 않은 남자라니 나도 아쉬울 거 없다고 생각했다.
여행 전 날, 다시 카톡이 왔다.
미래의 남편- 우리 봐야죠. 뉴욕 가기 전에 봐요. 언제가 좋을까요?
나- 저 내일 아침 9시 비행긴데요?
이 때 남편은 아차 싶었다고 한다.
그동안 약속을 매번 어긴 것에 대한 미안함과 이대로 떠나면 영영 어긋난 인연이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었다고 고백했다.
뉴욕에 도착한 순간 내 마음은 온통 뉴욕, 뉴욕, 뉴욕.
그런데 JFK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남편의 카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잘도착했어요? 친구네 집은 어디에요? 아 거기. 재밌게 놀아요. 등등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콧구멍에 바람 가득 든 다람쥐 새끼마냥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브루클린까지 온 뉴욕을 헤집기 시작했다.
여행 나훌째 였을까. 카톡이 울렸다.
미래의 남편- 내 생각 안나요?
내가 먹은 음식 사진들을 마구 보냈다.
나- 이런데 지금 댁 생각이 나겠어요? 나 뉴.욕.에 있다구요.
다음 날 쯤 또 카톡이 울렸다.
미래의 남편- 심심해요.
나- 전 안 심심해요.
미래의 남편- ㅠㅠ 외로워요.
나- 주무세요, 그럼
미래의 남편- 빨리 와요.
나- 장난해요? 난 돌아가고 싶지 않다구요.
당시 남친도 뭣도 아닌 구썸남 축에도 낄까말까했던 그 남자는 나에게 I♥NY 티셔츠와 콜럼비아 대학의 후드를 사다달라 부탁했다.
아니 요즘 시대에 누가 촌스럽게 해외여행가는데 기념품을 사다달라 그러나 하는 생각에 무겁고 돈도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미래의 남편- 언제 돌아온다고 했죠?
나- 한국시간으로 일요일 저녁이요.
미래의 남편- 공항에 마중 나갈까요?
서둘러 I♥NY 티셔츠를 세장에 5달러 주고 구매했다.
안구겨지게 정성스레 포장해 캐리어 깊숙히 곱게 접어 넣었다.
인천 공항은 언제나 반갑다.
대한민국 여권이라 쓰여진 곳을 통과할 때면 아 역시 자국민이 최고구나 싶다.
남자의 얼굴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 키가 많이 작았던 것 같은데..
상관없다 그것만으로도 다가오는 남자 중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뭘 걱정했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잘 다녀왔냐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는 마치 연인처럼 친숙했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뒷통수의 온기가 계속 찌르르 거렸다.
무엇이 이 남자를 이토록 바뀌게 한 걸까.
후에 알게 되었지만 남편은 나를 굉장히 도도하고 쿨한 아메리칸 마인드의 소유자로 생각했다고 한다.
게다가 뉴욕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는 여자라니..
가십걸 매니아인 남편의 환상이 더해져 나와 연애를 하면 가십걸 같은 간지나고 쿨한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돌아오는 길에 배고프지 않냐며 자신의 단골식당으로 안내했다.
제일 비싼 활복에 낙지까지 들어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비탕을 눈 앞에 두고 있자니 참 좋은 사람같아 보였다.
내가 살던 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였다.
남자는 내 여행 가방을 들고 낑낑 거리며 집안까지 가방을 들어다 주었다.
호의를 베푼 그에게 그냥 가라고 하기 뭣하여 커피를 내려주었다.
그는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간을 들여 아주 천천히 마셨다.
짐을 풀고 그에게 알랍녁 티셔츠를 건네려는데 그가 내 냉장고를 열고 감상하고 있었다. 뒷짐을 진 채..
아니 이건 뭔가 싶은데 이번엔 선 채로 내가 틀어놓은 개콘을 보며 낄낄 거린다.
나- 편하게 앉아서 봐요.
했더니 진짜 편하게 침대에 앉아서 개콘을 끝까지 감상하고 떠났다.
잔에는 식어버린 에스프레소가 아직 반쯤 남아있었다.
여독으로 인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정신없이 잠들었던 것 같다.
시차 때문일까. 다음 날 아침 출근 시간 훨씬 전에 눈이 떠졌다.
그에게 연락이 와있다. 집 앞이란다.
함께 아침을 먹을 요량으로 스타벅스에 갔다.
커피 두 잔과 내가 좋아하는 '루꼴라'- 소개팅때도 흡입했던 남편이 증오하는 그 식물-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자리를 잡았다.
미래의 남편- 저.. 나.. 어때..?
나- 에?
미래의 남편- 남자로서 어떠냐구
뭐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급한 전개가 이루어 질 줄은 몰랐다.
나- 뭐 괜찮은 사람 같아요.
미래의 남편- 그럼..저.. 나랑..
나- 뭐요
미래의 남편- 저..우..우리...
나- 연애하자구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강남역에서 처음 봤을 때 지었던 그 사랑 듬뿍 받고 자란 미소였다.
그의 가지런한 치아가 빛났다.
미래의 남편- 그럼 이제 내 여자친구야..?
나- 그래요.
회사에 데려다주며 내 얼굴을 쓰다듬으려는 그의 손은
내 광대에 닿을듯말듯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세번의 만남 이후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