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관찰일기

남자의 키와 여자의 몸무게

그 오묘한 상관관계

by 심효진

소개팅 후에는 키빼고 다 괜찮아보였던 남자가 막상 사귀고 나니 키가 작은게 너무도 거슬리는 남자가 되었다.
어딜 가도 무얼 해도 이 남자 키만 보였다.

도대체 키가 몇일까..?

도저히 가늠조차 안되었다.
170이 안되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또 나보다는 확실히 크고 흠.

지금의 남편과 첫데이트는 생활인답게 킴스클럽에서 장보기였다.
차 있는 남자와 장을 보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두유도 사고 우유도 사고 치즈도 사고 자몽도 사고 양파도 사고 애호박도 사며 무거운 거 위주로 막 주워담았고
남자는 옆에서 워셔액이랑 섬유유연제, 라면 따위를 부지런히 담았다.

마트에서도 주변에 다른 남자들이 지나가면 곁눈질로 비교하며 키를 가늠해보려했지만 도저히 불가했다.
방금 지나간 남자 어깨쯤 오는 것 같은데 그럼 저게 대체 몇이란 말이냐. 아오

계산을 하고 남자는 목이 마르다며 윗층 맥도날드에 들려 커피를 한잔 사야겠다고 했다.
커피를 기다리며 팔목이 뻐근한지 주먹을 쥔 채 팔목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내 눈알이 열심히 주먹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생각한건 오로지 아 키가 작아서 그런가 팔도 짧구나 였다.
키높이 구두는 커녕 드라이빙 슈즈를 신어 바닥에 딱 달라붙어 다니는 건 또 뭐람.



이토록 단점만 크게 보이니 이 연애가 지속될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내가 남자의 키가 궁금했던 것만큼이나 남자는 나의 몸무게가 궁금했던 것 같다.
연애를 시작하고 좀 친해졌다 싶은 뒤 늘 내가

나- 오빠 근데..키 몇이야?
미래의 남편- 몰라, 기억 안나

남자들은 신검도 다 받아서 모를리가 없는데 개구라치지말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남자가 물으면

미래의 남편- 뿅뿅아 근데.. 몸무게 몇이야?
나- 몰라. 기억 안나

이상하게도 똑같은 대답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보는 이에따라 47에서 53까지 매우 다양한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보통과 통통-키가 매우 작음을 고려-의 촘경에 있는 여자였기에 그가 궁금해하는 것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에 남자는 내가 다니는 동선마다 체중계를 깔아 놓았다.

화장실에서 무심코 나오며 매트에 발을 비비려는데 체중계가.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가는 문지방을 넘으려는데 체중계가.
찌개를 들고 밥상에 옮기려고 돌아서는데 체중계가.

이건 뭐 쥐덫마냥 한번만 밟아라하는 심보였다.
쥐새끼마냥 요리조리 잘도 피했지만 아닌 척 딴 데를 보며 발로 슥 밀어놓는 통에 하마터면 밟을 뻔하여 공중으로 튀어오르길 몇 번.
언제까지 피해다닐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나는 남자 모르게 체중계를 버려버렸다.

미래의 남편- 어? 뿅뿅아, 체중계 어디갔어?
나- 버렸어.
미래의 남편- 뭐? 아 우 아

남자는 그럴리 없다며 방 곳곳을 뒤졌지만 이미 재활용수거함에 넣어버린 체중계가 나올리 만무했다.


이럴줄은 몰랐겠지.









그 후로도 삼년여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한 아이의 아빠와 엄마가 되어버린 지금,

내 몸무게는 저 때에 비하면 훨씬 증가했고 남편의 키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다.

물론 우리에게 외모에 대한 강박(?)이 전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아직 남편은 탈모의 위협을 두려워하고 나는 출산 후 다 빠지지 않은 뱃살을 내려다보며 때때로 분개하곤 한다.


하지만 밤마다 피부만은 늙지말자고 서로의 얼굴에 시트마스크팩을 붙여주며

그래도 당신이 최고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그 남자와의  세번째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