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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Nov 06. 2022

독일에서는 가을에 호박 요리

가을을 주홍빛으로 물들일 홋카이도 호박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이 되면 독일의 슈퍼마켓에는 주황색 호박이 등장하고 소셜미디어를 켜면 온갖 브랜드에서 자사 상품을 활용한 호박 레시피를 제안하고 레스토랑에는 호박 특선 메뉴가 나타난다.


홋카이도 호박

이 호박이 왜 독일에서 홋카이도라 불리는지는 어떤 독일인에게 물어봐도 속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는데 슈퍼마켓이나 레스토랑에서 Hokkaido 호박이라고 하면 항상 저 호박을 가리킨다. 독일에는 주키니, 버터넛, 우리나라 단호박, 늙은호박 등 아주 많은 호박이 있는데 그 중 가을에 제철을 맞는 저 오렌지색 홋카이도가 제일 특별하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호박의 종류가 저렇게 많으면서 이름이 제각기 따로 있는데 또 호박이란 보통명사는 Kürbis로 따로 있다는 게 독일어 학습의 즐거움이자 괴로움이다.


호박 플람쿠헨

매년 10월 중순에서 11월 초면 슈투트가르트와 근교 루트비히스부르크 등지의 레스토랑에서는 2-3주간만 먹을 수 있는 특별 호박 메뉴를 팔고 어떤 곳은 아예 호박 메뉴판을 따로 만들어두기까지 할 만큼 호박철은 이 지역에서 나름대로 연례 행사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나도 분위기에 편승해 호박 메뉴를 체험해봤다. 다음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쓰겠지만 사진 속 음식인 플람쿠헨은 독일인의 주장으로는 슈투트가르트 또는 칼스루헤 근방이 고향이며 프랑스인의 주장으로는 스트라스부르가 고향인 음식으로 아주 얇은 도우 위에 치즈, 햄, 채소 등의 토핑을 올린 일종의 피자다.

호박 피자라니, 호박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특별한 채소라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우리나라에서 호박 피자를 상상하면 조금 이상하긴 한데 독일에 있을 때는 신기해서 주문해봤다. 안타깝게도 위 사진 속 호박 플람쿠헨에 쓰인 호박은 숙성이 덜 되었는지 쓴 맛이 나고 전체적인 토핑의 맛과 겉돌아서 다시는 주문해보지 않았다.


호박파스타

동네 레스토랑에서 호박 특선 메뉴를 팔길래 먹어봤는데 별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의외로 맛있어서 세 번이나 가서 먹었다. 호박 소스도 그렇지만 호박씨가 맛있어서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이걸 맛있게 먹은 기억 때문에 한국에서도 호박씨를 안 버리고 요리에 써 보려 했는데 씨가 너무 딱딱하기도 했고 왠지 그때와 같은 맛이 나지 않아서 포기했다.


호박 마울타쉔

지역 호박 축제 유튜브에서 가져온 사진인데 축제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지만 왠지 사진을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스크린샷을 빌려왔다.

마울타쉔은 슈투트가르트 근방에서 유래한 전통음식으로 독일식 만두인데 주먹만한 크기부터 새끼손가락만한 다양한 크기에 다양한 만두소가 들어가고 레스토랑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해서 내오지만 위 사진 속 마울타쉔은 다진 고기와 호박이 주재료이고 나이프로 자른 조각을 호박 소스에 푹 적셔먹으니 맛있었다.


호박맥주/ 구글 이미지 검색

사실 독일은 맥주순수법을 제정하여 맥주에 홉, 맥아, 효모, 물 이외의 다른 재료를 첨가하면 독일법상 맥주로 취급받지 못하지만 ‘실험적인’ 맥주만 모아 파는 곳에는 가을 호박철이면 독일 각지의 마이크로브루어리에서 생산한 각종 호박맥주가 매장 선반에 늘어서 있다. 게다가 베일리스나 다른 위스키 브랜드에서도 가을이면 독일 한정으로 종종 호박 에디션을 출시하기도 해서 하드 리큐어를 좋아한다면 한번쯤 체험해 볼 만하다.


호박 베일리스/ 출처: 베일리스 인스타그램

요즈음 인스타그램에서 보니 내가 슈투트가르트에 살 때는 없었던 베이글 카페도 새로 생겨서 호박씨를 다다닥 붙여 구워 호박과 치즈와 루꼴라를 넣은 스페셜 호박 베이글 샌드위치도 팔고 이전과 달리 브런치 카페에서도 호박철을 맞아 호박파이 등 생각지 못했던 호박 메뉴를 파는 것 같다.


내가 지낸 기간동안 큰 변화가 없었던 슈투트가르트는 언제나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곳 친구들이 보내 준 사진 속에서 내가 모르는 모습이 보여 한편으로는 서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의 방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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