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놀라움이 그대를 기다려요
독일 대학 기숙사에 짐을 푼 다음날 아침, 아침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기숙사 앞 베이커리에 갔다.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한 주먹만한 호밀빵과 버터브레첼을 사고 나서 케이크 코너로 몸을 돌렸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다.
물론 케잌 전문점이나 카페에 가면 커버 사진으로 쓴 것처럼 동그란 모양의 케잌도 있지만 베이커리 케잌은 대부분 저렇게 판에다 구워 위에 소보로나 젤라틴을 얹은 모양이라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기도 쉽지 않고 독일어 왕초보 입장에서 케잌 이름만 보고 뭔지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옆에 있던 다른 고객이 영어로 설명해줘서 그 사람이 추천하는 걸 사 왔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맛이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 사 온 케잌은 바로 몬쿠헨(Mohnkuchen)으로, 양귀비 씨앗이 주재료인 케잌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로서는 양귀비 씨앗을 음식 재료로 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했는데 독일에서는 양귀비 씨앗 케잌, 양귀비 씨앗 요거트, 양귀비 씨앗 푸딩 등 각종 디저트에 양귀비 씨앗이 아주 다양하게 쓰인다. 독일인들은 이 몬쿠헨을 아주 사랑해서 항상 추천하지만 나에겐 무척 낯선 맛인데다 심리적 거리감이 있는 소재라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베이커리를 뜻하는 Bäckerei(베커라이) 또는 이 케잌을 판 곳의 이름처럼 Bäckerhaus(베커하우스) 출신의 케이크인데 독일에 간 첫날엔 이게 대체 뭔지 몰라서 황망한 눈으로 케잌 판매대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과일 같긴 하지만 잘못 보면 빨간색 소스가 뿌려진 버섯 같기도 해서 케잌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고 그때는 플라우멘(Pflaumen:자두)가 뭘 뜻하는 단어인지도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실제로는 자두가 아주 새콤한 맛을 내서 신맛을 중화시키려고 케잌을 만들 때 설탕을 어마어마하게 들이부은 탓에 이 케잌을 먹기 위해서는 커피가 꼭 필요하다.
특유의 나이테 모양 때문에 바움(Baum:나무)쿠헨이라 불리는 케이크로 위 사진처럼 초코나 다른 재료를 가미해 맛을 낸다. 제일 맛있었던 버전은 초코 럼 바움쿠헨이었는데 반죽을 럼에 적셔 구워서 위에 초코를 입힌 케이크였다. 이런 건 알코올이 0.8-1% 정도 들어가 있어 미성년자에게는 팔지 않는다고 한다. 위 사진의 케이크는 바움쿠헨의 변형이라 이름이 Baumkucher Torte(바움쿠헨 모양의 토르테)고 카페 주인분이 그 카페의 역작이라고 했다.
이 케이크는 바움쿠헨 조각을 잘라 토르테 모양으로 만든 거지만 독일 카페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바움쿠헨은 우리나라에서 종종 보이는 나이테 모양이 있는 빵을 케잌시트처럼 잘라 케잌처럼 단면에 크림과 과일을 올려 쌓은 모양이다.
독일어에서 케이크는 Kuchen(쿠헨)과 Torte(토르테)로 나뉘는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토르테가 더 장식적이고 쿠헨은 조금 더 투박하게 생겼으며 토르테와 다르게 파이류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 한다. 그러니 베이커리에 파는 대부분의 네모난 케이크는 쿠헨에 속하고 카페에 파는 예쁘고 동그란 케이크는 토르테인 것이다.
내가 살던 바덴뷔르템부르크 주에는 독일 동화 ‘크라바트’에도 나오는 ‘검은 숲’, 즉 Schwarzwald(슈바르츠발트)가 있는데 이 슈바르츠벨더 키르쉬(Kirsch:체리)쿠헨은 그 검은 숲에서 나는 체리를 럼에 절여 초코시트에 생크림과 함께 층층이 쌓고 초코로 뒤덮은 케잌이다. 이 케잌은 독일의 케잌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케잌이다! 이상하게 슈바르츠벨더 키르쉬토르테(!)라고 하는 건 거의 못 봤고 대부분의 경우 키르쉬‘쿠헨’인 걸로 봐서는 키르쉬쿠헨 자체가 보통명사 취급인 것 같다. 체리를 럼에 절여 만든 케잌이라 그런지 가끔은 이 케잌을 주문하면 나이를 묻곤 했다.
독일에서는 과일이 많이 나서 넘쳐나는 딸기, 블루베리, 산딸기나 각종 다른 과일로 케이크나 잼을 만드는데 독일의 과일 케잌이 다른 곳과 다른 점은 바로 수분 증발 방지를 위해 과일 위에 설탕 과포화 상태인 젤라틴을 마구 끼얹는단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과일 케잌은 대체로 매우 달다. 처음에는 젤라틴을 보고 충격받았지만 나중에는 젤라틴을 다 걷어내고 먹게 되었다. 물론 이건 취향차이라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젤라틴을 안 걷어내고 그냥 먹는다.
치즈케이크는 Käsekuchen 또는 Käsetorte로, 만든 사람 마음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데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치즈케잌을 만들 때 레몬 반 개 분량의 레몬즙을 짜넣어서 상큼한 레몬향이 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치즈케잌을 별로 안 좋아했지만 독일에서는 곧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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