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과일 파운드케잌이 있다면 독일에는 슈톨렌
11월이 되니 발 빠른 베이커리들은 벌써부터 슈톨렌 예약 판매를 시작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도 독일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기 위해 진작 예약을 마치고 슈톨렌을 받을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참이다.
어릴 때 백화점에서 대체 어떤 공정을 거친 건지 모를 빨갛고 작은데다 시럽을 뒤집어쓴 체리와 정체 모를 건과일이 가득 든 퍽퍽하고 잘 부스러지는 과일 파운드케잌을 팔았는데 듣기로는 그게 영국과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에 먹는 케이크라고 해서 12월만 되면 엄마 손을 붙잡고 그 케잌을 사러 갔다. 지금 나무위키를 보니 ‘장기보관이 가능하고 칼로리가 높아 영미권의 군대에서는 아예 전투식량에 포함시키기도 한다’고까지 쓰여 있는데, 이런 파운드케잌에 대응되는 유럽대륙 내 음식이 바로 슈톨렌이다.
슈투트가르트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산 슈톨렌인데, 무려 23유로나 했지만(대충 3만원) 레드와인을 아낌없이 넣어 빵이 빨갛고 아무 건과일이나 넣은 게 아니라 정말로 럼에 듬뿍 절인 건포도와 블루베리와 크랜베리를 넣어 그만한 돈을 주고 먹을 가치가 있었다. 마켓산 슈톨렌은 대도시가 아니라면 15-20유로 사이에서 살 수 있지만 슈투트가르트는 나름대로 큰 도시라 20유로가 넘는다고 들었다.
일반 빵가게에서는 슈톨렌 한 덩이에 6-7유로 정도지만 럼에 절이지 않은 아무 건과일을 넣는 경우가 많고 슈톨렌 겉면의 설탕도 파우더가 아니라 입자가 굵은 황설탕(!)을 한가득 버무려놓은 곳도 많다. 애초에 파운드케잌이나 슈톨렌에 건과일이 들어가는 이유가 집에 남아도는 과일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으니만큼 아무 과일이 들어간다 해서 불평할 건 아니긴 하다.
(Tipp: 독일에 사는 가난한 학생인데 슈톨렌을 꼭 먹어보고 싶다면 1월 초에 빵가게에 가면 팔고 남은 슈톨렌을 떨이로 처리해서 슈톨렌을 할인가에, 게다가 어쩌면 1+1으로 살 수도 있다)
슈톨렌은 오래 두고 조금식 꺼내먹는 저장식품이라 슈가파우더를 한가득 묻혀 상하지 않도록 하는데, 구입 후 두 달쯤 지나 꺼내보면 위의 슈가파우더가 대부분 빵에 흡수되어 있다. 그러면 칼로리가 두세배로 뛸 테니 웬만하면 설탕을 털어낼 수 있을 때 빨리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단, 한국에 파는 슈톨렌은 판매하는 곳에 따라 보존기간이 달라서 어떤 곳에서는 냉장보관과 최대한 빨리 먹을 것을 주문하기도 하니 오래 놔두고 먹는 것은 추천사항이 아니다.
독일제 슈톨렌은 냉장보관용이 아니며 상온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도 럼에 절여 세균번식을 막은 건과일과 무한정으로 퍼부은 설탕 탓인지 두 달 쯤은 괜찮았다.
빵의 가운데에 보이는 덩어리 같은 것이 마치판인데 이게 들어간 게 오리지널 버전이다 보니 한국에 있는 슈톨렌은 대부분 이게 통으로 들어가 있다. 마치판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이게 있으면 나머지 빵 부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면 „ohne Marzipan”, 즉, 마치판 없는 슈톨렌을 구입한다.
마치판(Marzipan)은 설탕, 꿀, 아몬드 가루가 주재료인데 빵에 발라 먹는 스프레드 같은 질감이고 점성이 없으면서 당연한 얘기지만 엄청나게 달다. 왠지 모르게 독일인의 호불호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 중 하나인데 독일인에게 마치판을 좋아하는지 물으면 Ted Talk를 할 기세로 열정적으로 마치판에 얽힌 온갖 기억을 열거하며 마치판을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결론을 내기까지 20분은 걸릴 정도다. 마치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좋아해서 (필시 마치판 광인이 운영할) 어떤 카페에 가면 마치판으로 한 층을 채운 초코케잌, 마치판 카페라떼 등 온갖 마치판 관련 디저트를 판다. 이런 사람들은 슈톨렌을 좋아하는 이유로 통으로 들어간 마치판을 꼽기도 한다.
Guten Appetit! (맛있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