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글뤼바인을 마시며 행복한 크리스마스
영국에서는 멀드와인(mulled wine), 프랑스에서는 뱅쇼(vin chaud)로 불리는 글뤼바인(Glühwein)은 시나몬 스틱, 정향, 육두구, 배, 오렌지, 건포도와 설탕을 가득 넣고 끓인 와인이다.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이렇게 끓인 와인을 마셔서 체온을 높여 감기를 예방했다고들 한다.
글뤼바인은 해당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지역마다, 그리고 부스마다 맛이 달라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맛의 글뤼바인을 마신다는 핑계로 축제의 글뤼바인 부스 도장깨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글뤼바인은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서 달기도 하고 과일과 향신료를 가득 넣어서 와인 고유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만들었다면 대부분 비슷한 맛이 난다. 그리고 나는 글뤼바인은 와인을 끓여 만들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낮아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상하게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독일인들은 저렴한 와인으로 만든 글뤼바인을 마시면 다음날 숙취로 심하게 고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숙취 없는 글뤼바인’을 파는 부스를 기억해두고 몇 년째 같은 곳만 찾기까지 한다.
글뤼바인 위에 크림을 올려줘서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슈퍼마켓에서 산 휘핑크림 대신 우리나라 카페에서 커피에 올려주는 부드러운 동물성 생크림이 올라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있는 글뤼바인 부스마다 그 도시의 모습이나 상징을 그린 독특한 컵에 글뤼바인을 담아줘서 독일인들은 다른 도시에 여행을 갔다 예쁜 컵을 보면 집에 기념품으로 들고 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사진 속 천사 컵을 집에 들고 오고 싶었지만 계속 보다 보니 천사가 너무 심술맞게 생긴데다 술 마시는 것을 질책하는 표정이라 욕심내지 않고 반납한 후 컵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내가 갔던 2016-19년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의 취리히나 프랑스 파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도시에서 글뤼바인 한 잔에 3유로에서 3유로 50센트 정도였다. 가장 싼 곳은 한 잔에 2유로 30센트(약 3천원)이고 가장 비쌌던 취리히는 글뤼바인에 하드 리큐어인 아마레토까지 더해 프리미엄 버전이긴 했지만 6 스위스프랑이라 7천원이 넘었다!
한국에 와서는 유럽에서 마셨던 글뤼바인 맛이 그리워져서 와인을 사서 직접 끓여보기도 했는데 내가 직접 마실 거라 생각하니 아무래도 설탕을 덜 넣게 되어서 예전에 마셨던 것과 똑같은 맛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꼭 크리스마스 마켓에 다시 가서 글뤼바인을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