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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Jan 15. 2023

자기소개와 새해 다짐의 어려움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라는 노랫말 가사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잘 알아가는 것 같다가도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나도 나를 모르겠는 시간 속에서 우왕좌왕할 때가 있다. 작년 한 해가 딱 이러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다시 일터로 나간 지 2년 차였던 작년, 1분기까지는 나름 미라클 모닝과 미라클 미드나잇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개인시간을 확보하려 했고 루틴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휘몰아쳤던 3월에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 안 그래도 약했던 체력이 더 떨어진 채로 체력의 마지막까지 쥐어짜서 남은 한 해를 보내면서 루틴은 많이 무너졌고 어쩌다 남는 시간이 생기면 무얼 할까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흘려보낸 적도 많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서 너무 이것저것 하려 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하자고, 오히려 멀티보다 한두 가지 일(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는 것이 잘 맞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선택은 했는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는, 선택한 두 가지에조차 집중할 여력이 많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계획해 나가는 것이 맞을지, 그렇게 나도 나를 모르겠는 시간 속절없이 쌓여갔다.




2021년 8월 예정된 복직을 앞두고 2020년 연말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작디작은 아이와 매일 한 몸처럼 지냈는데, 이젠 평일 퇴근 후 저녁이나 되어야 눈 맞추고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는 게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휴직 전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때를 떠올리면 더더욱 복직일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생각마저 시시때때로 하곤 했다. 그런 나의 바람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갔다.


복직 전에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전화영어도 하고 영어 온라인 수업을 등록해서 아이가 깨기 전 이른 아침, 잠들고 난 늦은 밤을 이용해서 열심히 공부하며 출산 후 잠시 내려놓았던 나의 자기 계발 여정을 시작했다. 영어로 시작된 자기 계발은 블로그 책리뷰와 육아블로그로 이어졌고 인스타 자기 계발 해시태그를 타고 온라인 수익화에까지 이르렀다. 계속해서 이어졌다는 건 아직 '이거다!' 싶은 것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작은 열정과 설렘을 가득 안고 있었지만 점점 시들시들해졌고 '내가 하고 싶은 게 진짜 이건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쓸모없었다는 건 아니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할 때 마음이 편하고 더 해보고 싶은 기분이 샘솟는지, 반대로 무엇에 관심이 그다지 없는지 등등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생각보다 나는 아날로그적인 취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러다 만나게 된 온라인독서모임과 브런치 작가되기 모임을 통해 잊고 있었던 읽고 쓰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어릴 적에도 독서클럽활동을 굉장히 좋아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뒷 내용이 궁금해서 새벽 세시가 넘도록 책을 다 읽고 잤던 적도 있다. 토론하고 글쓰기를 즐거워했던 아이였는데 학업에, 취업에, 회사생활에 치여 잊고 지냈다.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겠 작년을 돌이켜보면 그래도 한 가지 선명해진 것이 있다. 읽고 쓰는 일을 놓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읽고 쓰는 두 가지 일의 비중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성을 반년 넘게 허우적대면서 깨달았다. 슈퍼우먼이 될 수 있다는 최면을 걸면서 시간과 체력이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남들 기준과 속도에 맞추려 하다 보니 삐걱거렸고 되려 무기력해졌던 건 아닐까.


긴 시간을 돌아왔지만 지금 나는 일상 속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고, 이를 어떻게 경제적인 영역까지 확장시킬까 매일 방법을 모색하고 조금씩 실천해나가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읽고 쓰는 일을 취미의 영역에 두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노력하고 실행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혹자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어버리면 좋아하는 마음이 희석된다며 잘 판단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취미로 즐길 때가 좋은 거라고.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럴까 봐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선 일 따로 취미 따로 하기엔 체력이 부족한 사람이 바로 나다. 게다가 출퇴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취미를 즐길 시간은 잠을 줄이진 않고는 부족했고 그렇게 수면부족을 감내하며 즐기는 취미가 진짜 취미가 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무엇보다 읽고 쓰는 것이 본업에 밀려 부차적인 일이 되는 것에 공허함을 느꼈고, 일은 좋아할 수 없는 것이란 공식에서 벗어나면 일도 어떤 일이냐에 따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매 순간 기쁘고 행복해야 진짜 일을 즐기는 거라는 다소 팍팍한 기준에 갇히지만 않으면 될 거란 믿음과 함께.


이것도 지금 글을 쓰는 순간까지의 생각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할 수도 있다. 어느 책에선가 사람들이 글을 쓸 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생각이 곧 나 자신으로 규정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생각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고 저자가 쓴 책이 그 저자를 완벽히 다 알려줄 수는 없는 거라는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이랬다 저랬다 주관 없이 살라는 말이 아니라 처음의 생각을 평생 고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짜장면이 먹고 싶다가도 짬뽕이 먹고 싶은 게 사람이고 너무 사고 싶어서 샀다가도 막상 사고 보니 꼭 필요한 건 아니어서 환불도 하는 게 사람이다. 오늘은 싫었던 사람이 내일은 좋아지기도 하는 것이 드물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의 나'까지 '지금의 내'가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해 보면 가능하지 않은 의무에서 벗어나도 괜찮다.


매년 오늘처럼 새롭게 자기소개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 내년 이맘때의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나를,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한 마디로 규정짓기 어려워서 구구절절 말이 길었던 자기소개 겸 새해 다짐글이었다. 1년 후에는 다른 목표를 세우겠지만 그때도 아마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내 이야기를 길게 늘어뜨리지 않을까 싶다. 단지 그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졌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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