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생각해 보면 질문의 범위가 너무나도 넓고 깊어서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렵지만 오히려 이것저것 떠올리다 보니 마음이 가는 나의 행동과 태도들이 보였다. 그중에 하나는 '괜찮다고 상대방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만큼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진 못 했던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어떤 고민이나 실패담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할 때, 나는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다고 누구나 잠시 주춤하기도 하고 삐끗할 수 있는 거라며 다시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고 진심으로 잘 되길 빌어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해주면서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에는 꽤나 인색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작심삼일이 되어버리면 '아휴, 그래 목표가 너무 거창했어.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까? 이 정도 의지로 무얼 하겠어.'라며 나를 의심하거나 스스로의 한계치를 정해버리곤 했다. 소중한 사람들이 비슷한 문제로 자책을 하고 있다면 괜찮다며 격려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게 뻔하면서 말이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나를 아껴주지 못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에게만 유독 엄격했던 잣대를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는 계획대로 되는 일보다 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변동성이란 친구가 늘 따라다녔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생활패턴에 나를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아이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기에 세워놓았던 일정, 목표들이 별 수 없이 지켜지지 않는 날이 다반사였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들조차도 '네가 좀 더 틈새시간을 잘 활용하고 아이를 제시간에 재우려고 노력하면 목표한 것들을 다 이룰 수 있어.'라며 몰아붙이기도 했다. 밤에 줌모임이 있는 날엔 두어 시간 전부터 마음이 초조해졌고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직도 초저녁처럼 에너지 넘치게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가 또 해맑은 아이 표정에 맥없는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책 계정을 운영하다 보니 대부분의 인친들이 다독가이거나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서 회사와 가정 외의 개인 생활에서는 거의 모든 관심사는 책으로 연결됐다. 그런데 좋은 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무리하게 되고 결국 탈이 나기 마련인데 책을 더 많이 읽어야만 할 것 같고 관심이 가는 여러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날로 커져만 갔다. 현실적인 스케줄을 외면한 채 서평단을 신청했고 한꺼번에 여러 개의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그 밖에도 자기 계발 모임, 글쓰기 모임 등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다 했을까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한 눈 팔지 않고 앞만 보게 하는 환경 속으로 몰아붙였다.
이렇게 바쁘게 지내야만 뭐라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한 손으로는 책을 펼치고 꾸역꾸역 읽었고 퇴근 후 한 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에 저녁을 부랴부랴 먹으면서 못다 읽은 분량의 책을 읽거나 인증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글을 쓰곤 했다. 그리고 딩동 소리와 함께 할머니집에서 저녁을 먹고 온 아이를 맞이하면서부터 다시 육아출근이었다. 보통 열 시쯤부터 잠자리독서와 옛날이야기, 잠자리 대화로 이어지는 루틴을 보내고 나면 아이는 열한 시에서 열한 시 반 사이에 잠이 들었고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읽거나 리뷰를 남겼다. 열시나 열 시 반부터 시작하는 줌모임이 있으면 중간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못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분이었고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냈다는 느낌이 든 게 언제 적인지 가물가물했다. 피로와 두통, 인후통은 덤이었다.
무엇을 이루려고 이렇게 조급하게 휘몰아치는 걸까? 불현듯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쓰는 것에서 다시금 즐거움을 찾았고 취미라고 이야기하게 되었고 나아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어졌다. 여기서의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일상을 돌아보니 '하고 싶어서'로 착각한 '해야 하니까'의 비중이 점점 더 커져 있었다. 독서모임 지정도서도 유익하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책은 뒤로 미루게 되었고, 사람들과 줌에서 소통하는 것도 유쾌하고 힐링되는 시간이었지만 늘 변수가 생길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았다. 내 가족이, 친구가 이런 고민을 이야기한다면 뭐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를. 나 자신의 상황 속에 파묻혀 고민할 때는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선명해졌다. 무리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을 지속할 수 있게끔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 년 넘게 참여했던 독서모임을 잠시 쉬기로 했고 서평단도 정말 읽고 싶은 책만 신청했다. 순간의 호기심으로 모임 참여를 결정하지 않고 시간과 체력을 충분히 고려했다. 그랬더니 책장 속에 꽂혀만 있던 책들에 눈길을 줄 수 있었고 나만의 속도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즐거운 것'의 비중이 다시 커져갔다. 그리고 오히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견고해졌다.
밤에는 아이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고 출근 시간보다 몇 시간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하지만 매일 분량을 정해놓거나 주 몇 회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진 않는다. 며칠 새벽기상을 하지 못했다고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네가 그럼 그렇지.'라며 타박하지 않고 '오늘 푹 잤으니 내일부터 또 도전해 보자'며 응원해 준다. 출퇴근길에는 여전히 책을 읽기도 하지만 서서 가야 할 때는 무리하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메모하거나 멍 때리기도 한다. 책 리뷰를 남긴 날엔 남편에게 링크를 보내주어 어떤지 물어보기도 하고 꽤나 괜찮은 조언을 얻기도 한다. 참고로 남편은 SNS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나 아내 책 리뷰는 잘 챙겨본다. 빠르지 않고 몰입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먼 길을 돌아 나만의 방식을 이제야 조금씩 찾아가는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앞으로의 시간도 더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