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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화 Nov 19. 2021

[성 상담] 여자친구가 성에 대해 너무 부정적입니다.

성욕이 낮고 성관계를 피하는 여자친구가 고민이에요. 

Question; 

  20대 남성입니다. 또래 여자친구를 만난지 4년째입니다. 

  여자친구는 만남을 시작한지 초반부터 성욕이나 성에 대해 말하기를 불편해하고 성관계도 정해진 날에만 합니다. 서로가 행복하고자 하는 성관계이지만 여자친구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생각하여 저의 성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생겨 힘듭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니 저도 죄책감마저 듭니다. 혹시 저의 여친이 여성성욕감퇴장애일까? 어떻게해야 서로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여자친구는 이전에 다낭성난소증후군으로 진단을 받고 경구복합피임약을 복용 중입니다. 




선화쌤's Answer;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사연을 보면서 남자친구로서 최대한 여자친구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픈 마음이 느껴져서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 주신 점도 감사하고 칭찬해드리고 싶어요.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남자친구도 고민이 많이 되겠지만, 이게 또 여자친구분도 자신의 입장에서는 매우 남자친구에게 맞추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많이 부족할 수 있겠지만요.. 


  상황을 정리해보니, 여자친구 분은 성관계에 대해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고 성에 대해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크고 이를 떠올리거나 마주하는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성에 대해서 강박적이기도 하고요. 섹스 중독의 강박이 아닌 완전히 반대인 성을 회피하는 강박이죠. 마주하려 노력해보신 것 같으나 그럴 때마다 정신적으로도 거부감이 드니 이 것이 신체적 증상(메슥거리거나 머리가 아픈 자율신경계 증상)으로 이어지기까지 하니 더 피하게 되고 이게 악순환의 고리를 가는 것 같아요. 


  의사로서는  여러가지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들을 봤을 때 'A는 B다!'라고 분류하고 정의하는 것이 편리합니다만, 제가 상담자들을 만나면 만날 수록 어떤 꼬리표를 달아버려 한정하는 것이 오히려 처한 상황을 해결하는데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제가 <여성 성욕 저하 장애>라는 진단명에 대해 논문들을 포스팅하긴 했지만, 이를 누군가에게 씌우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할 일인것 같습니다. 여성성욕저하장애에 여자친구분이 일부 해당되긴 하지만, 제 생각은 여자친구의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무언가에 대해 오히려 focusing을 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경구복합피임약이 성욕을 저하시키는 효과가 일부 있지만 그것이 주 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자친구분과 좀더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네요. 여자친구분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혹시 부모님 사이는 어떠셨는지, 가정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가정내에서의 여자친구분의 역할은 어떤 식이었는지, 성에 대한 트라우마(어떤 종류든) 같은 것이 있었는지, 첫 경험의 기억은 어땠는지 등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나마 참으로 희망적이고 다행인 것은 남자친구인 사연자가 건강한 성인식을 갖고 여자친구분과 이를 대화로 계속 풀어가려고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두분 사이의 관계에서 성 착취자가 아닌 동등하게 서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건강한 성 생활을 지향한다는 분이란 것이 참 다행이라 느껴지네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지만 여자친구분의 상태와 가장 일치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여성성욕저하장애 뿐만 아니라 불안 장애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불안장애는 여러 패턴으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성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성관계를 기피하는 경우도 많구요. 그런 면에서 저는 여자친구분이 아얘 성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요구나 입장을 나름 많이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만 해도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거든요. 


불안장애를 가진 분들은 다음과 같은 증상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1. 불면증, 수면장애 또는 수면 유지 문제

2. 특히 잠을 잘 자지 못할 때의 피로감. 

3. 두근거림

4. 두통

5. 구토, 메스꺼움

6. 과민성 장 증후군

7. 쉽게 깜짝 깜짝 놀랜다. 

8. 근육통, 긴장 또는 근육의 강직. 

9. 경련 또는 떨림

10. 식은 땀. 


  이런 증상들이 신체적 친밀도를 피하게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섹스나 전희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율신경계의 변화가 급격하게 나타나게 되고 이 자체가 심박수를 높이고 더 무거운 호흡을 유도하면서 땀도 나는 변화를 일으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즐거우려고 섹스를 하는 건데 내가 긴장하면서 나타나는 증상들과도 비슷하다보니 스스로는 이를 회피하게 되는 거죠. 또한 더 이상 자신의 걱정 리스트에 두려움이나 걱정을 더하지 않기 위해 성적인 부분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성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 장애가 있는 분들에게는 자신의 매력, 수행능력에 대한 걱정, 수치심, 죄책감 등을 증가시킬 수 있거든요.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통 성 회피는 근본이 되는 원인에 따라 그 자체로 또는 불안 장애 치료의 한 부분으로 보고 치료하게 되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지행동치료와 심리역학적 치료로 상담을 받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드려요. 어쩌면 성 회피, 그 자체는 원인이 아니라 다른 문제로 인해 발현되는 증상일 수도 있어요. 정신과 중에 상담을 중점적으로 하는 클리닉이 있습니다. 지역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찾아보시면 정신과 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상담치료를 하는 심리상담 센터들이 있어요.  여기는 심리학과를 나와서 상담을 하는 상담사분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정신과보다는 좀더 저렴하게 상담을 받으실 수도 있어요. 아니면 근처 정신과에서 추천하시는 곳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담자의 특성에 따라서 1:1 또는 집단치료, 온라인 치료도 요즘은 가능한 곳들도 있어요. 그리고 경구복합피임약을 오랫동안 복용했다면 한동안 휴약기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피임은 콘돔을 좀더 철저히 이용하는 방법으로 하구요. 직접 만나서 또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는데, 서울에 계시고 거리가 멀지 않으면 병원으로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 같아요. 


  인간은 성(性)적인 존재입니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성은 우리 인생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것을 애써 부정하고 숨길 뿐이죠. 성이란 것은 건전하게 그리고 건강한 관계에서 서로의 친밀함을 최고로 느끼고 표현하는, 어쩌면 가장 극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지금의 상황을 잘 해결해서 두분의 관계에서 더욱 돈독해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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