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진정한 여성의 자유를 위한 약일까?
대학병원에서 임상강사로 일할 때였다. 여느 날과 같이 응급실 당직날이었고, 전공의로부터의 갑작스러운 전화가 울렸다. 응급 수술이나 응급 콜은 일상이었기에 여기까지는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선생님, 20대 초반 환자고 하혈을 주소로 내원했는데 '미프진'이라는 약을 먹고 이렇게 됐다고 합니다.
'미프진'? 대학에 있는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어째 뭔가 마냥 생소하지는 않았다. 미페프리스톤이라는 성분이 산부인과에서 쓰여서 비슷한 건가싶어 검색창에 '미프진'을 쳤다. 그랬더니 나오는 말, '먹는 피임약'.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과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 이 두 성분을 정제해 만든 약물의 상품명이다. 현재 전 세계 60개국에서 인공 유산 목적하에 처방되고 있는 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가 위헌 판결이 났고 더 이상 불법은 아니지만 미프진이라는 약물을 들여오는 것은 불법인 상황이다. 임신이 되면 황체에서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이 자궁 내막을 두꺼운 상태로 계속 유지시켜 수정란의 착상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미프진은 이 프로게스테론의 정상적 기능을 차단하여 자궁내막이 유지되지 못하게 (월경을 하는 원리처럼) 유산을 유도하는 기전으로 마지막 월경 이후 49일 이내 복용이 권고되는 약이다.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프로게스테론은 자궁 내막에 작용하며, 임신이 되면 배란이 이루어진 난포는 황체로 변하면서 약 한달간 프로게스테론을 분비하여 임신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임신이 일어나지 않으면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셧다운되면서 두꺼워져 있던 자궁내막이 떨어져나가면서 월경이 시작된다. 미프진은 이 프로게스테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수정란의 자궁벽 착상을 막거나 이미 착상된 수정란을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유산을 유도하는 약이다
결국 응급실로 온 이 환자는 임신 14주였는데, 불법적으로 구입한 미프진을 복용하고 제대로 자궁내 있던 수태물들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서 계속 자궁 출혈을 일으켜 저혈량성 쇼크 상태로 대학병원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초음파로 다시 자궁내 수태물 여부를 확인하고 소파술을 한 후 수혈 및 수액 공급을 하며 입원을 시켰다.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미프진이 최근 다시 뜨거운 감자로 이슈가 되고 있다. 낙태법이 사라진 지금 여전히 낙태수술에 대한 기준은 여러 정치적, 의학적 및 여러 단체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산부인과 진료실의 문턱은 예전보다 낮아졌지만, 전문가와 정치인들의 대립과 방관 속에서 여성들은 '셀프 낙태'라는 그럴싸한 방법으로 미프진 구입을 서두르고 있다. 그로 인해 제대로 전문가인 산부인과 의사의 감시를 벗어나 여러가지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그 예로, 내가 겪은 환자처럼 제대로 수태물이 빠져나오지 않아 저혈량성 쇼크가 생긴다거나, 체내에 남은 수태물에 염증이 생겨 패혈증이 생겨 의학적 응급상황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마지막 월경 이후 49일 이내에만 복용을 해야 하는 엄격한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 주수를 무시하고 만병통치약처럼 여겨 제대로 이 기준을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임신을 원치 않는 남편이나 남성 파트너가 여성에게 미프진을 복용하라고 강권하여 복용하는 끔찍한 경우도 있다. 마치 미프진을 응급피임약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도 증가하는 추세다.
낙태에 대한 통계는 2017년 1월 국회 토론회에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발표가 가장 최근의 통계이자 발표이다. 그 당시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110만 여건의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하루 평균 약 3,000여건의 낙태수술이 시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OECD 최하위 출산율과 함께 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의 불명예도 함께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난 2010년 15~44세의 가임기 여성들을 상대로 인공임신중절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3명꼴 (29.6%)로 낙태 수술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더욱 끔찍한 현실을 마주한다,. 이런 국가적 통계는 현실의 문제를 축소시킨다는 사실이다.
정부 데이터는 맹목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정부는 낙태에 대해 축소해서 말할 것이고 일부 의사들은 무분별한 낙태 수술로 돈을 벌 것이며 이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축하할테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이미 과거의 데이터이며 또한 데이터 수집 방법의 한계에서 비롯된 인위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 진실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때로 진실은 훨씬 암울하고 잔인하다.
2015년 미국의 자료를 보면 자가낙태를 찾는 구글 검색이 70만건을 넘어섰다. 이와 비교해 같은 해 낙태 시술 병원에 대한 검색은 340만건이었다. 이는 낙태를 생각하는 여성의 상당수가 이를 혼자서 처리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성들은 '임신중절약 온라인 구입', '무료 임신중절약' 등 비공식적인 경로로 약을 구할 방법을 16만 회 검색했다. 옷걸이로 낙태하는 방법을 찾는 검색은 4,000건에 달했다. 여성들은 공식적인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어려울 때 비공식적인 방법을 찾는다. 미국의 자료지만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본다. 낙태를 강력하게 막을 수록, 낙태 수술에 대한 제대로된 사회 안전망이 부재할수록 자가낙태, 셀프낙태 검색률이 높다. 따라서 제대로 된 낙태율이나 셀프 낙태, 미프진 사용 여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작고 네모난 빈칸에 단어나 문구를 입력하는 일상적인 행동들이 작은 진실의 자취를 남겨 만들어진 심오한 현실을 추적해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 여전히 미프진 뿐 아니라 낙태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결정해야 할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은 이를 방관하고 있다. 이런 회색지대가 더 오래 지속될 수록 여성들의 위험은 가속화될 것이다. 미프진은 무조건 적으로 여성에게 자유를 허해줄 약이 아님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적극적으로 국회에 알려야 한다. 허가된 세계 60여개국의 제도적 상황도 파악해야 한다. 또한 제대로 된 피임에 대한 방법과 미프진의 실체, 처방 기준 등에 대해서도 대국민 홍보가 필요하다. 셀프 낙태는 일부 여성단체들이 주장하는 여성의 신체결정권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몸을 해칠 수 있는 것이 과연 자유인지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직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상태에서 선진국들이 미프진을 허가했다고 우리나라도 급히 미프진 수입을 허가해서는 안된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성이나 피임에 대해서는 후진국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약만 들어온다고 그동안 켜켜이 쌓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여성의 자유? 이는 남녀 모두에게 시행되는 제대로된 성교육과 피임에서부터 시작된다. 미프진이 해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