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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화 May 26. 2022

생식기 냄새가 너무 신경 쓰여요.

Olfactory reference syndrome, ORS란? 

20대 여성, 생식기와 그 외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신경쓰여서 성관계시 집중을 못함. 그러다보니 윤활액도 잘 안나오게 되고 통증이 심하다고 함. 향수도 뿌려보고 남자친구와 성관계 전에 둘이 깨끗이 씻고 하는데도 냄새가 계속 난다고 호소함. 특별히 질염 증상은 없음. 



산부인과 진료실에 가장 많이 오는 분들 중 한 분이 바로 질염 환자분들이죠.  특히 생식기 냄새는 여성이라면 많이들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문제라서..  질염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때 중요한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생식기 냄새기도 합니다. 특히 가드네렐라 바지날리스(Gardnerella Vaginalis)라는 균이 일으키는 세균성 질증의 주요한 증상이 바로 '생선비릿내 나는 질 분비물'이에요. 

  그런데 막상 진료실에 오셔서 STI 검사(질 분비물 균 검사)를 하고 내진을 했을 때 '꽝'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다행히 염증이 없다고 말씀드리면 그 때부터 신경전이 시작됩니다. 환자는 분명 냄새 때문에 괴롭다고 하고, 의사는 괜찮다고 하고. 결국 서로 신뢰가 깨져서 의사는 환자를 진상환자로 여기고, 환자는 병원이 이상하다며 다른 병원을 찾아 닥터쇼핑을 다니게 되죠. 저도 종종 이런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참 답답하고 어려운 문제에요. STI 검사에서는 분명 나쁜 병균이 전혀 나오지 않은 '음성'으로 결과가 나오거든요. 

  이런 분들은 실제로는 질염보다는 Olfactory reference syndrome (ORS, 신체악취공포증, 이하 ORS)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말이 좀 어렵죠? 이는 환자가 환취(가짜 냄새)를 실제 냄새처럼 느끼는 것으로 강박장애의 일종입니다. 위와 같은 case를 보이는 경우를 묘사한 논문도 나와 있더군요. 


"감염이 없는 상태에서의 만성 질 악취는 신체악취공포증일 가능성이 높다."



 ORS는 피부, 입, 항문, 생식기 등에서 악취가 난다는 생각(일종의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과적 상태입니다. 수치심, 당혹감, 상당한 고통, 그로 인한 회피 행동 및 사회적 고립을 동반하게 되요. 위와 같이 섹스 중에 그런 느낌이 들 경우에는 섹스를 회피하게 되어 성생활이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지나치게 샤워를 많이 하거나, 향수를 많이 뿌리기도 하고, 여러 번 옷을 갈아입거나 반복적으로 냄새가 나는지 몸에서 냄새를 맡기도 합니다.  

  ORS는 1890년대부터 정신의학 문헌에서 논의되어 왔어요. 생각보단 이전부터 있어왔던 정신과적 상태지만, 아직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은 어려운 상태지요. 전 세계적으로 발병은 보고되고 있지만 진단이 아직 불충분하고, 학계에서도 잘 몰라요. 그러다보니 유병률도 잘 모르고.. 데이터가 적죠. 이렇다는 이야기는 ORS 환자들은 정신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는 종종 다른 과 임상의에게 도움을 많이 요청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위의 제가 만난 환자처럼 정신과가 아닌 저와 같은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반복적으로 와서 증상의 불편함을 호소하기 때문이지요. 식별 가능한 특별한 원인 없는, 생식기 냄새가 불편하다고 산부인과에 많이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분들도 저와 같은 산부인과 전문의이기 때문에 ORS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는 저와 같은 비(非) 정신과 의료진들이 꼭 알아야 할 증후군이에요. 그래서 환자분들께 정신과 진료를 같이 받을 수 있게 연결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ORS의 정확한 원인은 잘 모릅니다. 제가 만났던 환자분은 어린 시절, 낮선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성관계시 ORS가 발현되고 섹스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었어요. 이를 잘 다뤄줄 수 있는 것은 정신과 선생님들이기 때문에 솔직한 이전의 트라우마를 상담과 필요시 항우울제를 사용하여 다뤄줘야 합니다. 생각보다는 반응이 좋지는 않다고 실제 임상을 보시는 정신과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더군요. 그래도 여러 논문에는 SSRIs(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인지행동치료(CBT)를 이용하여 16주간 집중적으로 치료를 했더니 많이 호전되었다는 보고들도 있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증상이 ORS로 인한 것이다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할 수만 있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비슷한 증상을 지닌 분이라면 첫번째는 커플이 같이 산부인과/비뇨기과 진료를 받아서 생식기 감염이 없는지를 먼저 확인해보고, 특별한 게 없다면 정신과 선생님도 만나서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꼭 권유드립니다. 성에 대한 강박과 문제들은 정신과 선생님과 함께 해결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저는 이렇게 협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문제를 다루지 않고 회피를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삶의 질이 너무도 떨어져서 진정한 자유로움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지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진정한 건강과 자유로움, 행복감을 꼭 느끼시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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