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사이가 중요한 것이 아냐!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는 인간의 뇌를 규정하는 성격이 성적인 욕구와 관련하여 발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를 심리 성적 발달이라고 하였고 ‘리비도’, 일종의 성적 갈망이라고 일컬었다. 이에 따라 심리 성적 발달 단계를 5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시인 W.H. 오든은 이런 성적 갈망을 가리켜 ‘참을 수 없는 신경 중추의 가려움’이라 말하기도 했다. 틀린 말이 아닌 것이 실제로 우리가 갈망하는 대부분이 가랑이 사이가 아닌, 뇌에서 생겨난다. 즉, 모든 욕망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뇌로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의 모든 감각 신호를 처리하는 곳이자 넘실대는 호르몬이 분출되는 욕망의 샘이다.
어느 순간 파트너와의 섹스가 지루해질 때가 온다. 인정하기 싫고 우리 역시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변태 같다, 너무 급하다, 서툴다 같은 말을 듣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아니면 이기적이다, 예민하다, 까다롭다, 건성 건성 한다, 신경질적이다, 고지식하다, 냉담하다 등 뭐든 괜찮다. 단, 지루하다라는 말만 아니면 된다.
그러나 정말 섹스가 지루해졌다, 무관심해졌다는 이 두 가지 말은 커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공통적인 불평이다. 놀랍게도 연애한지 얼마 안 된 젊은 사람들이 특히 더 그렇다. 순간의 만족이나 빠른 해결을 강조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 평균적으로 결혼 후 2년 만에 찾아온다는 권태기가 훨씬 더 일찍 찾아와 사람들을 근질근질하게 만든다. 도움 받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나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야가 없다면 우리 모두는 연애라는 배에서 뛰어내리거나 아니면 연애 관계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고 성급하게 결론 내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서서히 뿌리 내리는 성적 지루함에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역설적이지만 자연은 스스로가 욕망의 불꽃을 지핀 다음 거기에 다시 찬물을 끼얹는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타고 난 작은 불씨만 남는데, 불감증의 한파 속으로 영원히 빠져들어 다시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헤매지 않으려면 그 불씨를 다시 살려내야만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미국의 성의학 최고 권위자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스물 다섯 커플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처벌이나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면, 다른 사람과 하룻밤 섹스를 하는 부정을 저지를 의향이 있는가?”
분명 과학적인 여론 조사는 아니었지만, 설문 응답자 25명의 남성 가운데 17명이 그렇게 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반면, 여성은 단지 2명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현재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남성이 무엇 때문에 하룻밤 섹스에 무임 승차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남성들에게 보통 지금까지 경험한 최고의 섹스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은 연애 초기의 불꽃 튀던 시기의 섹스라고 대답한다. 그 때의 섹스가 그렇게 굉장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물으면 대부분이 아무 말도 못한다. 물론, 여자가 침대에서 열정적이었거나, 아니면 그의 페니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훤히 알고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섹스가 그토록 굉장해지진 않는다. 그 시기의 섹스가 기억에 남는 건 그때 상대방에게 느꼈던 흥분 때문이며, 그런 기억은 단 한차례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던 연애 초기 전체로 확대된다.
이 남성들에게 다시 “지금도 섹스가 그렇게 좋은가요?”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이 “네, 그렇긴 한데……” 였다. 여전히 섹스를 즐기고는 있지만 예전만큼 흥분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섹스가 더 다정하고 친밀한 것이 되었지만 많은 경우 완전히 지루한 것이 되어 버린 경우도 대부분이었고 사실상 설문에 응한 남성 모두 섹스가 연애 초기만큼 뜨겁거나 열정적이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이 남성들에게 연애기관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왜 섹스가 이전만큼 뜨겁고 열정적이지 않은지 묻자 대부분은 어떤 답도 하지 못했다. 그냥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스릴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새롭고 흥미진진한 자극을 찾는 존재다. 위험스런 일을 좋아하고 강한 방랑벽을 보이며 모험을 갈망하는 이도 있다. 물론, 반대로 익숙한 것에 더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애 초기단계 연인들의 뇌는 강력한 성 화학 물질로 가득 차는데, 이 때문에 쉽게 사랑에 빠져든다. 흔히 사랑에 취했다는 말을 곧잘 쓰면서도 우리 몸이 그 화학 물질의 영향에 지배 받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집중하는 동안 뇌는 몸에 운반되는 기분 좋은 호르몬들을 방출한다. 쾌락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을 분비하는데 이는 유대감과 사랑에 빠지는 첫 감정들을 촉진시킨다. 흥미롭게도 이는 마약 중독자가 약을 흡입했을 때 분비되는 것과 같은 화학물질이다. 함께 나오는 세로토닌은 기분을 북돋게 되는데 이 즐거운 호르몬 칵테일로 인해 우리는 얼굴에 큰 미소를 띠게 되며 행복에 겨운 아지랑이에 빠지게 된다. 특히 남성에서 더 많은 도파민이 방출되고 여성에서는 더 많은 옥시토신이 분비되며 이 차이가 우리의 다른 성 행동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 옥시토신이 성적 파트너와의 더 강한 정서적인 연관성을 나타낸다는 의견이 많다.
이렇게 분비되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은 우리 몸 속에서 천연 암페타민처럼 작용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성적인 흥분뿐만 아니라 어떤 목표 달성을 위한 행위 촉진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도파민은 그저 우리를 성의 노예로 만들어 난잡하게 굴게 만드는 호르몬이 아니라 뇌를 활성화하고 주의를 집중시키며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훨씬 더 노력하게 만드는 천연 자극제를 엄청나게 쏟아내게 만들어낸다.
하지만 일단 헌신적인 연인관계가 되면 섹스가 더 편안해지고 어느 정도는 더 쉽게 할 수가 있다. 그 때는 섹스가 더 이상 보상이 아니라 당연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결혼의 중요한 점일지도 모른다. 섹스를 못하는 것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이 결혼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호르몬들을 영리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단순하게 다리 사이에만 집중하는 섹스가 아닌 본능을 좀더 따르되 섹스를 밀고 당기면서 생기는 강한 고통의 쾌감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로 인해 생기는 기대감으로 한층 고조된 상태에서의 둘의 관계를 즐겨보자. 최고의 성기는 우리의 다리 사이에 있지 않다. 바로 매일 쓰는 우리의 두뇌,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