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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화 Oct 24. 2022

섹스리스 커플을 위한 랩소디


“피곤해?” 


N은 아내에게 말을 걸지만 이 말의 속 뜻은 따로 있다. ‘제발 나를 원한다는 표현을 보여줘.’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 애 학원도 챙겨야 하고.”


아내는 하품을 하면서 등을 돌리고 웅크린다. 16년 결혼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분석을 바탕으로 N은 해석한다. ‘싫으니깐 내 몸에 손 대지 마.’ 두 사람은 불을 끄고 아무 말 없이 나란히 누워 있다. 소리로, 기척으로 아내를 느끼려 하지만 등 돌린 아내는 곧 잠이 들어 버린다. 바깥에서는 차 경적소리, 간헐적인 사람들의 고함 소리들이 들려오지만 N의 마음은 비참함으로 무겁게, 무겁게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을 뿐이다. 


결혼 생활을 하면 법적으로 떳떳하게 섹스 파트너가 생겨서 더욱 자유롭게 성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모두가 생각하지만 현실은 의외로 180도 다를 수 있다. 이성적,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오랜 연인이나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는 이런 저런 오해나 걱정거리 따위는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물론, 이론적으론 미혼 남녀에 비하면 언제나 섹스가 가능하며 이는 물론 모두 합법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쪽만 원하는 섹스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행복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특히나 결핍을 완전히 채우는 행위인 사랑과 섹스에서 한쪽만 원하여 결국 이루었다고 치자. 뒤이어 밀려오는 자괴감과 수치심은 몇배로 커질 뿐이다. 즉, 어떠한 경우든 성생활인 수월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평생 성관계가 보장된다는 가능성의 이면에는 반대로 어두운 측면이 도사린다. 상대방이 잠자리를 거부했을 때의 그 충격과 당혹감, 수치심은 다른 어떤 관계에서 거부당하는 경우보다 근본적으로 더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클럽에서 방금 만난 상대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해봤자 그렇게 크게 당혹스럽거나 마음이 쓰라리진 않다. 어떻게든 금방 잊을 수 있는 거절의 종류들이다. 그렇지만 평생을 함께 하기로 선약한 사람에게서의 성관계를 거부당했을 때는 훨씬 더 묘하게 치욕스럽다. 


N은 이런 감정을 친구들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소한 것으로 치부당할 것 같았고 자신의 남성성을 부정하는 듯한 수치심도 느꼈다. 게다가 자신은 전문직에 나름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 아닌가. 이런 자신이 직장이나 사업의 문제가 아닌 고작(?) 섹스리스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자아 마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 더 이상 아내를 사랑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를 동료나 친구들에게 상의하리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부부 사이의 잠자리가 소원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상과 성애의 시간적, 공간적 영역 사이를 원만하게 이동하지 못해 애를 먹기 때문이다. 섹스를 할 때의 요구되는 자질과 일상생활을 할 때의 요구되는 자질은 180도 달라진다.


결혼을 하고 나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어디 그 뿐일까? 사소한 집안일과 끼니를 해결하는 문제부터 시간 관리, 재정 관리, 가정 내 규율 세우기 등 거의 작은 중소기업의 오너라도 된 양 이 시스템을 제대로 굴러가게 만들기 위해 운영에 힘써야 한다. 관료적이고, 절차적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교감신경의 활성 영역이다. 


그런데 섹스의 영역은 정반대의 덕목들이 필요하다. 욕망과 열정, 자유로움, 일탈, 상상력, 통제력 상실 등. 본질적으로 고상함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역할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통제와 자기억제와 반대되는 면이 부각되어야 만족스러운 섹스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섹스의 시공간과 일상의 시공간이 겹쳐 있으면 어떻게 될까? 서로 방해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대와의 섹스가 재미 없어서가 아니다. 현실의 큰 벽을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해서이고 그 해결책에 대한 깊으나 고찰을 해본적이 없어서이다. 우리는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섹스에 대해 고민을 멈추게 된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조금이라도 옷을 더 벗겨볼까 고민했다면 그 이후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고민을 서로가 멈추고 눈앞에 가슴이 보여도 더 이상 흥분하지 않게 되는 슬픈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절대적으로 성애와 일상의 시공간을 분리하려고 노력해보도록 해라. 결혼생활이야 말로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간의 연속이다. 섹스만큼 부부사이에 자연스러운 것이 없는 것 같겠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다. 절대 수월한 것이 아니다. 가끔은 서로에게 변화를 주자. 늘어진 속옷은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새로운 속옷에 투자를 해보자. 일을 마치고 온 그나 그녀를 위해 깨끗이 씻고 새로운 향수를 뿌리고 예쁜 슬립이나 속옷을 입어보자. 새로운 요리를 해서 그나 그녀를 기쁘게 만들어보자. 낡은 카페트나 커튼을 버리고 새롭게 단장을 해보자. 사랑은 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고상한 감정과 행위이다. 이 행위를 위한 나의 파트너를 기쁘게 해주는 노력 쯤이야 그 과정을 즐기기 바란다. 그 과정 또한 나 자신이 완벽해지기 위한 행위이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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